폴 워셔의 《복음》에서
23 부활 신앙의 근거
믿을 만한 증인들
어떤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라는 사실을 확증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목격자가 있어야 하고, 그들의 수가 충분해야 하며, 그들이 정직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성경의 증언이 이 모든 조건을 다 충족시킨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사역과 부활, 승천을 목격한 증인들이 있었으며, 이들의 진술이 성경을 기록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모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벧후 1:16)는 베드로의 말에서 한 치도 빗나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상황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의식했습니다. 가롯 유다의 공백을 메운 맛디아도 세례 요한의 세례에서 시작해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 부활과 승천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었습니다(행 121-26). 누가는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복음서를 저술했다고 강조했습니다(눅 1:1-4). 요한 사도는 모든 사도가 그리스도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으며, 그 관계가 그들이 믿는 교리는 물론, 다른 사람들을 향한 복음 선포의 토대가 된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첫 서신을 시작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일 1:1-4)
편견 없는 눈으로 살펴본다면,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직접 목격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거짓 풍문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손과 발과 옆구리를 직접 만져본 목격자라는 사실을 온 세상이 알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눅 24:39, 요 20:27). 그들은 예수님과 교제를 나누었고, 그분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습니다(눅 24:13-32, 41-49, 요21:12-14). 또한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는 광경을 보면서 그분을 경배했습니다(행 1:9-11).
둘째, 어떤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라는 사실을 확증하려면, 목격자 수가 충분해야 합니다. 목격자가 많을수록, 그 사건의 신뢰성이 더욱 커집니다. 신구약 성경에서도 이와 똑같은 원리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두세 증인의 증언으로 사건을 확증하라고 명령합니다(신 17:6, 19:15, 마 18:16).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조건을 충족시킵니다. 성경은 다양한 장소와 상황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목격한 증인이 수백 명에 달한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주일에 동산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고, 무덤에서 돌아오는 몇몇 여인에게 모습을 보이셨습니다(막 16:9-11. 요20:11-19, 마28:9, 10). 예수님은 같은 날 엠마오를 향해 가고 있는 글로바와 또 다른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막 16:12, 13, 눅 24:13-32). 또한 그날 해가 지기 전에 베드로에게 나타나셨고, 다락방에 있는 열 계자에게 모습을 보이셨습니다(눅 24:34-43, 요 20:19-25). 그 다음 주일에는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의심하는 도마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막 16:14, 요 20:26-31, 고전 15:5). 그 후에는 오백 명이 넘는 제자들에게 일시에 보이셨고, 이부형제인 야고보에게 나타나셨습니다(고전 15:6, 7). 그 밖에도 베드로와 요한과 다섯 제자가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요 21:1-23).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눅 24:44-49, 행 1:3-8).
따라서 목격자 수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은 이 사실을 강력하게 역설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역사에 기록된 사실로 믿는 주요 사건들 가운데 많은 사건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의 10분의 1에 불과한 사람들의 증언에 의존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국가에 큰 영향을 끼친 유명한 조약의 체결이나 왕족의 탄생, 각료의 발언이나 음모자의 계획, 암살자의 행동과 같은 사건들을 사람들은 아무 의심 없이 역사의 전환점을 이룬 사실로 받아들 인다. 그러나 그런 사건들을 실제로 목격한 사람은 거의 없다. …… 이 사실(부활)을 부인한다면, 모든 증거의 효력은 당장 끝장나고, “내가 놀라서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시 116:11)라고 말한 다윗의 말에 모두 동의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부터는 우리의 이웃을 의심해야 하고, 스스로 목격하지 않은 것은 절대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자신의 감각으로 직접 확인한 증거까지 의심하는 사태가 빚어질지도 모른다. 인간이 거기에서 얼마나 더 어리석어질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셋째, 어떤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라는 사실을 확증하려면, 목격자들이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다시 말해, 스스로가 믿을 만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회의주의자가 신약 성경의 증인들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증인들의 진실성을 논박하지 못했고, 그들의 도덕적 인 결함을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회의주의자들은 자기기만과 집단 히스테리의 가능성을 공격의 초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제자들과 1세기 유대인들이 부활을 믿고 싶어하는 성향을 지녔기 때문에 보고 싶어하는 것을 마치 본 것으로 착각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유대 민족은 로마 제국의 가혹한 압제에 시달렸다. 그 때문에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도래를 고대했고, 쉽게 설득 될 수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이미 거짓 메시아를 따랐던 이들도 있었다(행 5:36, 37). 이런 사실은 그들이 무엇이라도 믿고 싶어하는 성향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여러 차례 예고 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몹시 사랑하는 상태에서 그런 예언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자기기만과 집단 히스테리가 쉽게 싹틀 수 있는 심리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몇 가지 사실이 이런 이론을 간단히 논박한다.
첫째, 대부분의 유대인은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믿지 않았다. 그분의 사역과 죽음은 그들에게 거리끼는 것이었다(고전 1:23). 십자가의 메시지를 거리끼게 여기는 유대인들에게 부활을 강조해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아무리 외쳐봤자 틀림없이 설득력을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이 이론은 복음을 믿을 만한 성향이 전혀 없는 수많은 이방인이 불과 몇 십 년 만에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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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대체로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 점은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최초로 목격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다. 그러나 빈 무덤을 발견한 막달라 마리아는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다가 다른 곳에 숨겨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요 20:2, 13, 15).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뒤에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누가는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소식을 “허탄한” 말로 생각했다고 기록했고, 마가는 “듣고도 믿지 않았다고 기록했다(눅 24:9-11, 막 16:11). 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분을 동산지기, 유령, 엠마오로 가는 낯선 여행자로 생각했다(요 20:15, 눅 24:13-31, 37).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자세히 설명해 주신 후에야 그들은 비로소 의심과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눅24:25, 44-46). 도마는 그리스도의 손에 난 못 자국과 상처와 옆구리를 직접 보고 만지고 나서야 의심을 버렸다(요 20:24-29).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불신앙과 마음의 강퍅함을 책망하시며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라고 나무라셨다(눅 24:25, 26). 이런 사실은 제자들이 부활을 믿고 있었다는 주장을 용납하지 않는다.
셋째, 그릇된 망상이나 환영은 주로 한 개인에게 국한되는 것이 보통이다. 수백 명의 목격자가 똑같은 환영을 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더욱이 집단 히스테리가 가능하려면 대중을 강력하게 지배하는 정치 제도나 종교 제도가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부활과 복음은 그렇지가 못했다. 오히려 당시 제도들은 모두 단합해 복음의 메시지를 반대하고, 최선을 다해 불신을 조장하려고 애썼다. 당시 복음전도자들 가운데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자신의 대의를 이룰 만한 세력을 갖추기는커녕, 교육이나 훈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행 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