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통전적으로 성경 읽기
마태복음부터 처음 읽기/마 19:1-30

마 19:23-26 구원은 하나님으로서만 가능하다

by pooh_in_the_Way 2022. 4. 10.
728x90

마19: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마19: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19: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마19: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한 사람의 영적 실패에 관한 이야기는 예수의 총체적이고 단호한 선언의 모델이 되며,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나오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13:22)라는 경고를 보다 상세히 다룹니다. 이 청년이 직면한 구체적인 문제가 무엇이든, 이제 그의 경험은 “부자”가 직면하는 위험으로 보편화됩니다. “천국에 들어가다”라는 표현은 이곳의 제자도와 영생에 관한 본문 모두에서 구원을 가리키는 용어로 수차례 반복됩니다(5:20; 7:21; 18:3). 여기서의 핵심적인 의미는, 부자들이 천국의 왕과 맘몬에게 마음이 분산되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없다는 것입니다.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예수는 불가능한 일을 강조하려고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비유를 과장법으로 사용하십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26).

본 절은 마태가 “천국” 대신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를 사용한 매우 드문 본문 가운데 하나인데, 앞 절과의 평행은 두 표현이 동일한 의미임을 보여 주며 따라서 “하늘”(천국)에서 “하나님”으로의 변화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재물이라는 두 주인 사이의 대립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라는 보다 인격적인 표현이 선택되었을 수 있습니다.

 

25-26, 제자들이 너무 놀라서 말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있습니까?” 유대인들에게 부는 하나님의 복을 증명하는 표시였습니다. 제자들의 반응에는, 부자는  그들의 부가 하나님의 복의 표시이기 때문에 훨씬 천국에 들어가기 쉬울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들이 천국에서 배제된다면 과연 누구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인가? 이러한 반응은 구원을 인간적 가치관에 기초하여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동일한 관점에서 예수는 자신의 말에 대한 그들의 해석에 동의합니다. 인간적 자격에 기초한다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기쁜 소식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그의 은혜로운 주권으로 말미암아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대한 진리를 아는 것이 주어진 계시에 달린 것처럼(13:11) 그러한 이해에 기초한 구원 역시 하나님으로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구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선한 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는 청년의 질문에 대해 예수가 동일한 맥락의 대답을 한 후에 이어지는 내용으로서 이 진술은 결코 불합리한 추론이 아닙니다. 18-21절은 자신이 한 일에 따라 영생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말씀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는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고 제자도의 삶을 통해 예수를 따라야 한다는 취지로 제시됩니다. 그렇게 하는 자들은 이곳에 표현된 신적 “가능성”을 경험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