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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관한 크고 작은 소감들/부활절에

막 16:1-8 빈 무덤과 예수의 부활 이야기

by pooh_in_the_Way 2021.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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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6:1 <살아나시다(마 28:1-10; 눅 24:1-12; 요 20:1-18)> 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막16: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막16: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막16: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막16: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막16: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막16: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막16: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1

갈릴에서부터 예수를 따르며 섬기던 여인들이 이야기 끝부분에서 두드러진다. 이제 그들이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되는 사건들–예수가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고전 15:34)–의 가장 중요한 증거자들로 떠오른다.

 

마가는 마가복음 15:40, 47; 16:1에서 그들의 이름들을 일관성이 없이 열거한다. 이러한 차이들은단조로운반복을 피하기 위한 형태상의 변화 탓일 수도 있다. 번째 이름만이 다르다. 번째 언급(15:40)에서 그녀는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와 요세의 어머니 완전하게 묘사되어 있다. 번째 언급에서는 '요세의 어머니"다(15:47). 번째는 야고보에 대한 언급으로 축소한다(16:1).

 

마가의 수난기사(유대 당국자들이 예수를 죽일 작정을 하고, 그리고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밀고하겠다고 하고 하는 기사로부터 시작된다) 여인의 깊은 헌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녀가 아낌없이 예수에게 기름을 붓는 것으로 시작했고, 예수는 그것을 자신의 장사를 위한 준비로 해석했다. 또한 마가의 수난기사는 예수의 장사 후에 그에게 기름을 부으려는 주를 사랑하는 헌신한 여인들로 마친 셈이다. 살아 있는 예수의 머리에 부을 매우 값진 향유와 예수의 죽은 몸에 바를 향품이 예수의 죽음을 위한 물품으로 쓰임을 받는다. 그런 면에서 여인과 향유[향품] 예수의 수난 기사와 죽음을 감싸고 있는 1-2-1 수사법으로 마가복음이 얼마나 예수의 죽음을 돋보이기 위해 치밀하게 구성된 것인지 있다.

 

2

사실 성금요일에는 유월절 전에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리고 장사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으리라. 유대 당국자들이 보낸 파수병들과 일에 허락받은 아리마대 요셉와 그의 사람들이 일을 끝내야 했다. 모든 일을 시간 안에 처리하여야 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할 모른다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경고를 무시하지 못하여 파수병들은 무덤에 남아 지켰다. 여인들이 곧바로 예수에게 기름을 바르지 않았는지를 설명해준다.

 

일을 여인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에 대한 사랑과 충성심으로 말미암아 안식일이 끝나자마자(토요일 저녁에) 향품을 산다. 안식일에 향품을 없었고, 여행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안식일이 끝나자 있는 빨리 행동으로 옮긴다. 다시 하룻밤을 자고 안식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가 돋을 때에다시 무덤으로 향했다. 그들은 분명히 예수의 부활을 예상하지 못했다. 또한 사흘만에 살아나실 것이라고 하는 예수의 예고가 성취되었는지를 확인하려고 무덤으로 것도 아니다. 마가는 그들이 일찍 없기 때문에 삼일에 갔다고 분명하게 설명한다.

 

그들은 오면서 서로 걱정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여인들은 아직도 슬픔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들이 출발하기 전에 세워놓은 돌을 어떻게 옮길 것인지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에 대한 그들의 근심은 돌의 크기를 강조하게 만든다. 그것은 쉽게 굴릴 수가 없다. 기적만이 그것을 옮길 있다. 여인들은 희망감을 가지고 무덤으로 오지 않고 있기에 그들의 돌에 관한 고민은 극적인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들은 돌을 어떻게 옮길 있는지 염려하면서 무덤으로 다가오고 돌이 어떻게 옮겨질 있었는지를 의아해한다.

 

그들이 보았을, 그들은 이미 열린 무덤을 들어가는 일로 걱정했음을 깨닫게 된다. 돌이 옮겨진 것을 발견했을 때조차도 그들은 그것이 무슨 소식을 의미하는지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마가는 돌이 어떻게 옮겨졌는지를 말하는데 관심이 없다. 무덤은 여인들이 들어가서 예수가 거기에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있도록 열려있다. 그러나 무덤은 비어있지 않았다. 무덤을 들여다보면서 여인들은 젊은이가 옷을 입고, 예수의 시신이 눕혀져 있던 곳의  우편에 앉아 있음을 발견한다. 우편을 일부러 언급하는 것은, 길한 징조를 나타내는 은총의 편인 오른편임을 상기시킨다. 또한 벌어진 일에 대하여 예수를 대변하여 이야기할 있는 권세가 있음을 암시한다. 옷은 관례적으로 천상적 존재의 복장이다.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을 찾아 것도 없다. 이미 변화산에서의 예수의 옷에 대한 묘사를 보아도 충분하다( 9:3).

 

여자들은 열려진 무덤과 예수의 시신의 부재와 뜻밖의 천상적 청년의 존재를 발견하고 놀랐다. “놀랐다보기보다 고민스러웠다 의미가 강하다. 통상적으로 커다란 감정의 동요를 나타낸다.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의 모습을 보고 아래 남아 있던 무리들이 놀랐고( 9:15),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는 놀라시며”( 14:33, “슬퍼하사 대구를 이루면서)라고 때와 같은 뜻을 전달한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여자들은 놀랐을 뿐만 아니라 열린 무덤(예수의 시신의 부재) 신비하고 낯선 인물을 발견하고 고민스러웠을 것이다.

 

청년은 전형적인 천사들의 어투를 사용하면서놀라지 말라 말하는 천사다. 그는 여자들에게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예정대로 것이라는 말이다. 청년은 여자들이 무덤에 목적을 담담하게 진술함으로써 여인들을 재빨리 안심시킨다. 그는 여인들이 예수를 따르는 자들로서 예수에게 시중들기 위해서 것임을 알고 있다.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청년은 이제 예수의 시신이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않다”. 여자들의 얼굴에 쓰여진 믿겠고 이해할 없다는 표정에 응답이라도 하듯, 청년은 여자들에게 그를 두었던 살펴보라고 말한다.

 

여인들의 두려움과 의심을 해소시켜 후에, 청년은 이제 그들에게 예수의 제자들, 특히 베드로에게 가서 전하라고 명한다.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메시지가 단지 베드로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을 향한 것임을 보여 준다. “먼저 가다 단순히 갈릴리에 먼저 도착하겠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보이는 그의 리더십을 함축하는 표현이다.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부활에 대한 사도들의 신앙이 소문(, 여인들의 보고) 아니라 직접적인 체험과 목격에 의거할 것임을 분명히 말해 준다. 청년이 전한 메시지의 내용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스스로 바로 그러한 것을 예고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14:28). 갈릴리일가? 말에 함축된 뜻은 예루살렘으로의 운명의 여행을 위해 잠시 중단되었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진척시키는 사역이 이제 다시 재개되리라는 것이다.

 

3

물론 원래의 마가 이야기는 단락이 계속되어서 예고된 대로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나타나신 장면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마가복음의 가장 오래된 사본들은 여기 8절에서 끝이 난다. 급작스러운 종결은 의도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가복음이 8절로 끝나는지의 문제를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져 왔는데, 많은 학자들은 8절이 원래의 종결부라고 주장하고, 다른 많은 학자들은 원래의 종결부는 우연이든 고의적이든 망실되었거나 복음서 기자가 결론부를 쓰는 방해를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후커(Hooker) 마가복음서 전체의 기록 방식이 독자들로 하여금 믿음에 대한 결정적인 단계를 결정하도록 여지를 겨놓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흩어진 제자들 회복은 복음서 내러티브 밖에서 일어난다.

 

이제 빈 무덤 이야기를 뒤집어 보기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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