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부활의 실재
텅 빈 무덤과 목격자들
... 시체가 없어졌다는 것과 목격자들이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복음서에서가 아니라, 사도 바울의 편지에서였다. 예수가 죽은 지 15-20년 후에 그 편지가 쓰였다는 것은 모든 역사학자들이 예외없이 동의하는 바다. 가장 흥미로운 텍스트 가운데 하나가 고전 15:3-6이다.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15: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15: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고전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여기서 베드로는 단지 텅 빈 무덤과 사흘만의 부활을 (하나의 심벌이나 은유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을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하고 있을 뿐 아니라, 목격자들을 일일이 나열하고 있다. 그러니까 바울은 부활한 예수가 몇몇 개인들과 작은 모임에 나타나기도 했지만, 오백 명의 사람들에게도 모습을 보였고, 그가 글을 쓰고 있을 당시 이들 중 대다수가 아직 살아있으니까 보강 증거를 원하면 그들과 대화를 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 이 텍스트의 또 다른 중요한 특성은, 바울이 자기가 전달받았던 증언을 곧이곧대로 되풀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비판적인 학자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야기의 내용을 바꾼 민간설화를 퍼뜨리기 위한 어떤 절차를 거쳤으리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제 6장에서 내가 지적했듯이, 고대문화에서는 허구의 이야기와 역사적 해설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있었다는 게 최근의 인류학 연구에서도 밝혀지고 있다. 역사적인 해설의 변경은 허락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사도 바울이 주장하는 것도 그렇다. 자신이 전달하는 부활의 이야기는 예수를 직접 보았던 사람들의 입에서 들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부활의 이야기는 날조를 하고 싶어도 너무나 문제가 많았다. 모든 복음서에는 예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사람들이 여자들이었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당시엔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서, 법정에서도 그들의 증언은 증거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처음 목격자가 모두 여자들이었다고 말하는 건 교회에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다. 그래봐야 증언의 신뢰도만 떨어졌을 테니까. 어째서 여자들이 맨 먼저 예수를 만난 걸로 지목되었을까? 그걸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짜 그들이 예수를 최초로 봤다는 것이다. 라이트는 이런 기독교의 메시지를 처음 선포한 사람들이 이야기에서 여자들을 빼버리라는 압력을 엄청 받았을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여자들을 뺄 수가 없었다. 이야기가 너무나 널리 펴져버린 것이다. 부활을 처음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인생을 뒤흔드는 것이라, 예수의 삶에 관한 어떤 이야기보다도 더 많이 퍼져나가고 되풀이되었을 터였다.
... 바울의 편지들은 기독교인들이 처음부터 예수의 육신이 부활했음을 선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의 무덤이 틀림없이 텅 비었었다는 걸 의미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예루살렘의 어느 누구도 그의 가르침을 한 마디도 곧이듣지 않았으리라, 회의를 품은 사람들은 할 수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예수의 부패한 시신을 보여주었을 수도 있었을 게 아닌가. 또한 바울도 버젓이 공문서에다 십여 명의 목격자가 있었다고 –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부활의 이야기가 몇 년 뒤에 날조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유만만을 누릴 수 없다. 다른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의 무덤이 텅 비어 있었다는 사실과 그의 육신이 부활했음을 수백 명의 목격자가 증언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