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를 읽기 시작하는 분들에게 가끔 조급증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도대체 예수는 어떤 인물입니까?" 성경에 기록된 모습이 아닌, 역사적 자료들을 모아, 극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신문에 하나의 박스 기사로 올린 만한 인물평 형식으로 그려내 보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가 갈릴리 마을을 지나갈 때, 갈릴리 사람이라면 어떻게 보았을가? 크게 차이 나는 또 하나의 시선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자기 나름 대로의 자리를 차지하고 살아가는 그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예수의 삶과 공적인 활동에 관하여 그 누구도 거의 부정하지 않을 것들을 짤막한 목록으로 만들어서 제시하는 것이 우선 가장 안전합니다. 실존하였던 역사적 인물은 분명하니까요.
예수는 우리의 연대 계산에 의하면 '주전 4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때에 태어났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표현이 애매하지요. 주전/주후, 또는 기원전/기원후라는 구분은 서기 6세기 때에 제한된 정보를 토대로 생겨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BC(Before Christ, 주전), AD(Anno Domini, 라틴어로 '우리 주님의 날들에', 주후)가 사용되어 왔습니다만 요즈음은 BCE(Before Common Era), CE(Common Era, 유대인들도 동의한 표기법인데, 그들은 'Current Era'로 시용하기도 합니다)가 보편적으로 사용됩니다. 우리는 기원전, 서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합니다.
예수는 갈릴리에 있던 나사렛이라는 성읍에서 자랐는데, 나사렛은 대도시인 세포리스(Sepphoris)에서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예수는 아람어를 주로 사용하였고 히브리어를 어느 정도 사용하였으며, 아마도 일부 그리스어를 사용하기도(1세기 유대인들은 통상적으로 집에서 적어도 어느 정도의 그리스어를 배웠다고 전제합니다. 로마 제국의 일상 공용어이니까요) 하였습니다.
예수는 세례 요한이 활동을 하고 있던 주후 28년경에 공생애를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촉구하였고(어떤 의미에서 그런 것인지는 나중에 논의될 것입니다), 비유들을 사용하여 이스라엘 하나님의 나라 또는 통치를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는 갈릴리의 여러 마을들을 여행하며, 메시지를 전하고, 축귀들을 포함한 주목할 만한 치유 사역을 통해서 및 사회문화적으로 폭넓은 부류들과의 식탁 교제를 통해서 이 메시지를 실천하였습니다. 예수는 한 무리의 가까운 제자들을 불렀는데, 그들 가운데서 열두 제자에게는 특별한 지위가 주어졌습니다. 예수의 활동들, 특히 성전에서의 한 가지 극적인 행위는 유대교 내의 몇몇 구성 분자들(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특히 (적어도 활동의 말기에 이르러서) 대제사장측의 분노를 초래하였습니다. 이것이 부분적인 원인이 되어서, 예수는 로마인들에게 넘겨졌고 통상적으로 혁명가들에게 적용된 방식으로 처형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사역을 새로운 방식으로 계승하여 수행하였고, 그들 중 일부는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 의해서 박해를 받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내용에 더 많은 것을 포함시킬 수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방금 열거한 내용들만으로 이미 충분합니다. 우리가 예수에 관하여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하는 모든 것을 다 말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경을 읽으며 좀 더 심화된 연구와 상상력을 키워 나가는 데 필요한 출발점으로서는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골격에 몇 가지 좀 더 세부적인 내용들을 채울 수 있는데, 그러한 세부적인 내용들 중 대부분은 비교적 논란이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복음서들을 통해서 예수가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수행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습관적인 모든 행위들은 예수의 이력에 관한 우리의 전체적인 그림에 상당한 정도로 기여합니다.
예수는 순회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는 회당들, 개인의 집들, 비유대인 지역을 포함한 들판으로 다녔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제자들과 은밀한 모임을 갖기도 했고, 무리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였습니다. 적어도 한 번, 그러나 아마도 아주 자주,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거기에서 자신의 활동들을 수행했고, 특히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은 뭔가 특별한 의미를 띠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흔히 회당에 참석하여 공식적이고 공적인 예배를 드릴 때만이 아니라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상황들 속에서도 종종 홀로 기도를 드리는 모습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예수의 기도 생활의 특징 가운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예수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를 때에 “아바”라는 호칭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 부름말은 독특한 것으로서, 어린아이가 “아빠”를 부를 때에 사용하는 말이었다고 생각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둘 다 잘못된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아바”는 여전히 예수에게서 유일무이하게 발견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의 특징을 보여 주는 부름말의 한 형태입니다. 예수는 공생애 초기 광야에서 사십 일을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그 밖의 다른 경건한 유대인들과 구별되게 하였습니다. 예수는 육신의 가족 관계를 별로 중시하지 않았고 이것은 가족이나 제3자들에게 당혹스럽고 거슬리는 행동으로 느껴졌고 인식되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특히, 예수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종종 잔치 분위기 속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예수는 “죄인들”과 함께 먹었고 통상적으로 주류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렸습니다. 주류 사회라는 것은 유대교의 율법을 지켜 살아가는, 예수 당시와 그 문화 속에서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만하다는 것과 아울러 종교적으로 올바른 것, 하나님의 언약에 합당한 행실, 전승들 및 이스라엘의 기대들에 대한 충실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행위는 경건한 사람들 중의 일부를 화나게 하였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갈등은 예수의 일상적인 행동 방식의 특징짓는 식탁교제에서 나타납니다. 예수의 그 밖의 수많은 행위들과 마찬가지로 이 식탁 교제는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시작된 것을 알리는 한 가지 방식으로 보아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적대하는 분파의 사람들은 예수를 '먹보요 술꾼'이라고 비난하기도("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마태복음 11:19) 했습니다. "이러한 예수의 활동들은 유대적 배경 속에서 의미가 있고 특히 갈릴리의 사회 문화적 세계 속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예수의 행위들은 교회의 초기 선교의 몇몇 측면들의 선구적인 것들로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이러한 행위들은 유대적 세계관의 몇몇 측면들에 대하여 도전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는 습관적으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말하였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특히 온갖 부류의 사람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을 통하여 이 나라를 축하하였다고 안전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이러한 행위들과 말씀들은 예수의 세계관 또는 사고방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우연한 행동으로 보아져서는 안 되고, 적어도 예수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실천의 일부로 보아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