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4:1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마14: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마14: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마14: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마14: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마14:6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마14: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마14: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마14:9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마14: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마14: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마14: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14:1의 “그때”는 시간(예, “앞 단락의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니라 새로운 장면으로 전환할 목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헤롯(안티파스)의 반응을 언급한 1-2절만 내러티브의 이 시점에 해당되는 내용이며, 나머지 3-12절은 헤롯이 예수를 부활한 요한으로 생각한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회상”에 해당합니다
여기서의 헤롯은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던 헤롯 대왕의 아들인 헤롯 안티파스로, 헤롯 대왕이 죽고 나서 나눠진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주전 4년부터 주후 39년까지 다스린 통치자입니다. 여기 14장에서는 그의 아버지에게 사용했던 헤롯이라는 성(姓)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헤롯은 분봉왕으로 번역되는 테트라아르케스(tetraarches)입니다. 이 용어는 문자적으로는 1/4 통치자입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왕이 되기를 원했으나 로마는 한 번도 분할된 지역을 통치하는 자를 왕으로 인정한 적이 없기에, 헤롯은 왕이 아니라 “분할(또는공동) 통치자”(= 분봉왕)로 불립니다. 그는 아버지 헤롯 대왕을 닮아 간교하고 잔인했고 사치를 즐겼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헤롯 안티파스를 여우(눅 13:32)라고 부릅니다(눅 13:32). 누가의 묘사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형을 받기 전 안티파스에게 잠시 넘겨진 바 됩니다(눅 23:6-16).
헤롯은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신하들에게 예수는 죽은 세례 요한이 살아 난 사람이기에 요한의 능력이 그에게서 나타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합니다. 이는 아마도 예수와 요한의 메시지가 같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 헤롯은 예수를 요한의 환생으로 본다면 당시 민중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거나, 또는 예수의 행위가 요한의 행위를 계승한 것으로 헤롯이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헤롯이 예수를 자신이 죽인 요한으로 착각한 것은 그가 요한을 얼마나 위협적인 인물로 생각했는지 가늠하게 합니다. 헤롯은 요한의 “능력들(권능들)”이, 그리고 예수에게 나타난 그의 능력을 두려워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안디파스는 예수의 고향 지역 통치자로서 예수를 중심한 대중 운동에 관해 듣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천국”이 가까웠다는 예수의 선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소문은 과거에 베레아 유역에서 요한이 이끌었던 운동을 상기시켰습니다만 예수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하고 세례를 주는 자가 아니라 권능을 행하는 자라는 점에서 달랐습니다. 안디파스는 이러한 차이점에 대해 죽은 요한이 살아났다는 미신적 생각으로 설명했습니다(그는 이처럼 초자연적 인물에게는 이런 기적적인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헤롯은 요한이 광야에서 세례를 베풀고 사람들이 추종하는 현상을 정권을 위협하는 새로운 해방 운동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 연장선에서 예수에게서도 위협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특히 헤롯은 예수에 대한 보고를 듣고 요한이 환생해서 능력을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정치적 위협을 느꼈을 것입니다.
예수는 세례 요한의 투옥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이며(4:12) 요한의 제자들과 대화를 한 적도 있습니다(8:14~17; 11:2-6). 마태는 예수에 대한 헤롯의 견해를 언급한 다음 3~12절에서 헤롯이 요한을 어떻게 죽였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요한에 대한 내용은 예수에 대한 헤롯의 반응이라는 틀 안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요한에 대한 헤롯의 부정적인 반응과 결과는 예수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한 지도자들이 앞으로 예수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예견하게 하는 본문입니다.
요한은 헤롯이 형제 빌립의 아내와 결혼한 문제를 지적했기 때문에 헤롯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요한은 유대 광야의 동쪽에서 있으면서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에(요 1:28), 요단강 동쪽인 베레아를 관활했던 헤롯 안티파스(4:12; 19:1)는 이곳에서 요한을 체포했습니다. 요한은 헤롯이 형제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행위를 비난한 이유로 옥에 갇혔습니다.
헤롯 안티파스의 첫 아내는 베레아 동쪽에 위치한 나바티아 왕국의 왕이었던 아레타스 4세의 딸이었고, 헤롯의 이혼은 나바티아 왕족을 모욕한 행위였기 때문에, 이혼은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헤롯은 패하였으나, 로마의 개입으로 헤롯은 겨우 살아났습니다. 요한은 헤롯이 첫 아내(아레타스의 딸)와 이혼을 한 문제나 아내를 여러 명 두는 문제보다는 형제의 아내를 취한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너는 네 형제의 아내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이는 네 형제의 하체니라”(레 18:16), “누구든지 그의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살면 더러운 일이라 그가 그의 형제의 하체를 범함이니 그들에게 자식이 없으리라”(레 20:21). 또한 만일 요한이 샴마이 학파의 결혼 해석처럼 엄격한 입장을 견지했다면 음행한 연고 없이 왕이 이혼하고 결혼한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왕의 재혼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행위는 왕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통치를 반대하고 백성을 선동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또한 헤롯은 요한이 주도한 세례 운동 자체를 정치적 위협으로 느꼈을 것이기 때문에, 이혼과 재혼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요한의 전반적인 활동 자체를 저지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헤롯은 요한을 죽이려고 했지만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백성의 눈을 두려워해서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11:9; 21:26). 백성들은 요한을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의 세례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본 것은 정확한 판단입니다.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21:26). 요한은 선지자이므로, 고향과 자기 집에서 존경받지 못하는 운명을 겪습니다(13:57,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5절의 핵심 용어는 죽이는 것과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핍박을 받거나 죽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두 용어의 결합은 구약에서 살해당한 선지자들의 운명을 떠올리며 마태복음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요한이 투옥된 상태에서 헤롯의 생일을 맞아 헤로디아의 딸이 갈릴리의 유력 인사들 앞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요세푸스는 이 딸의 이름이 살로메라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마가복음 6:21은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이 생일잔치에 참석했다고 기록합니다. 살로메는 고관대작들 앞에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연회에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었지만, 식사를 할 때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따로 모였기 때문에 교양 있는 여자들은 남성들의 자리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남성들이 즐기는 연회에 참여하는 여성은 주로 성적인 유희를 제공하는 목적이었기 때문에, 살로메가 춤을 춘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었습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춘 장면은 헤롯 가문의 여성들이 성적으로 문란하고 부도덕한 사실, 즉 헤롯 가문과 당시 궁중의 낮은 도덕 수준을 반영합니다.
헤롯은 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맹세하고 약속하였습니다. 마가복음 6:23에서 헤롯은 나라의 절반이라도 줄 수 있다고 허세를 부렸습니다. 그는 무심결에 이 말을 내뱉었을 테지만, 통치자의 약속이었으므로 물릴 수가 없었습니다. 7절과 8절 사이에는 마가복음 6:24-25의 이야기가 빠져 있습니다(“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마가에 따르면, 딸은 모친에게 가서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묻게 됩니다. 모친은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도록 하고 딸은 급히 왕에게 가서 간청합니다. 딸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의 결혼을 비판한 요한을 죽이려고 헤로디아가 시킨 일이었습니다. 소반은 잔치의 음식을 담는 용도였을 것이지만, 고대 세계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적군의 머리를 잘랐는데, 헤로디아는 요한이 확실히 죽었다는 것을 확인할 용도로 참수형을 시켰을 것입니다. 특히 잔치에서 처형을 집행하는 것은 잔인함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헤롯은 백성의 반응을 염려했지만 맹세한 것 때문에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1절에서 헤롯을 분봉왕이라고 했던 마태는 이제 그를 왕으로 표현합니다. 사람들은 헤롯에게 아부하기 위해 그를 왕으로 불렀고 자신도 왕인 체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헤롯 안티파스가 왕으로서 모든 것을 다해 줄 것처럼 맹세하고서도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벌벌 떨고 있는 아이러니를 드러내려고 의도적으로 왕이라는 칭호를 붙였을 수 있습니다. 그토록 왕으로 불리기를 원했던 헤롯 안티파스는 잔인한 부인과 딸이라는 두 여인의 음모에 굴복하고 맙니다. 또는 마태가 헤롯 안티파스를 왕으로 칭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반대하면서 살해를 일삼은 선왕 헤롯 대왕과 연결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습니다.
헤롯은 사람을 보내서 옥에 있는 요한을 참수형시켰습니다. 머리는 쟁반에 담겨져 소녀에게 전달됐습니다. 소녀는 그것을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마태는 헤로디아의 딸을 소녀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소녀가 피가 흐르는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어머니에게 가져다주는 행동으로, 헤롯과 헤로디아의 딸이 보여 주는 잔인함과 도덕 불감증은 당시 헤롯 가문의 윤리적 수준과 헤롯의 통치를 가늠하게 합니다. 이렇게 헤로디아는 자신을 비판한 요한에게 복수했습니다. 이렇게 헤롯은 정식 재판 절차도 없이 요한을 처형하였습니다.
요한이 죽고 나서 요한의 제자들이 시체를 매장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선생을 매장하고 나서 예수를 찾아간 것은 요한과 예수의 운명이 서로 연결된다는 사실, 곧 요한과 예수의 연대성을 의미합니다. 두 인물이 연결되지 않는데도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올 리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