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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전적으로 성경 읽기
마태복음부터 처음 읽기/마 9:1-38

마 9:27-31 두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하시다

by pooh_in_the_Way 2021.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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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9: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마9: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마9: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마9: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마9: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단락의 이야기는 다른 치유 이적 기사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예수가 관리의 집을 떠나 때에, 맹인이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로 외치며 예수를 따랐습니다. 예수는 맹인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집은 갈릴리 사역의 본거지인 가버나움의 베드로의 집으로 보입니다(마태복음 8:14로 참조하십시오). 그러자 맹인들도 예수를 따라 들어갔습니다. 물론 그들은 부축을 받아 들어갔을 것입니다. 거기서 예수는 먼저 그들에게 "내가 능히    줄을 믿느냐", 그의 능력을 믿는지를 물었습니다. 맹인은 머뭇거리지않고주여 그러 하오이다라고 겸손히 대답했습니다. 예수는 대답을 들은 , 맹인들의 눈을 만지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였습니다. 그들의 눈이 떠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그들에게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경고하였습니다. 이 기사의 개요는 간단하지만, 살펴야 할 많은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이 단락에서 먼저 주목할 것은, 마태복음에서 처음으로 사람들이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일입니다. 물론 마태복음 1:1에서 마태가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하면서 복음을 시작한 일을 제외하고, 마태가 전하는 예수 이야기 속에서는 처음의 일입니다. “메시아 시대의 도래라는 주제가 맹인이 예수를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다는 내용의 기사 가운데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단락은 예수의 독특한 권능을 기술하는 외에, 마태복음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하나의 주제인구약 예언의 실현이라는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부터 10가지의 치유 사역을 소개하면서, 점차 예수의 명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치유 사역의 정점, 맹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알아본 사실이 이야기의 주된 특징입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는, 사무엘하 7:12-16 언급된,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소위 은혜 언약 성취하여 영원한 나라와 왕권을 가져올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맹인이 칭호를 사용했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야말로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적인 인물이므로, 그 메시아 된 표지, 곧 맹인의 눈을 뜨게 주는 것과 같은 사역을 행하리라는 소망이 예수에게서 실현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마땅히 ’(구약에서 YHWH[여호와, 또는 야웨]라고 읽지 못하고 아도나이’(나의 )라고 불렀던 호칭을 헬라어로 옮긴 퀴리오스 한글 번역입니다)라고 부름에 합당하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지금 여기서구현하고 계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오직 그분의 불쌍히 여기심에 호소할 있을 뿐입니다.

 

예수는 맹인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한 들어가고, 뒤따라 들어온 맹인들에게 내가 능히 줄을 믿느냐 물은 이유와, 눈을 만지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 말씀과, 눈이 떠진 그들에게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경고하여 말씀하신 이유는 맥락을 같이 합니다.

 

이제 믿음은 비로소 단순히 예수의 권능 또는 권세에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 예수가 메시아라는 , 소위 기독론에 의지한 믿음으로 달리 합니다. 예수는 그것을 제자들 앞에서 가르치기 위하여 맹인들과의 대화가 필요하였고, 이제 그가 메시아이심은 유대 사회에 커다란 충격으로, 그리고 그것이 마태는 원치 않은 방향으로, 그것도 빠르게, 유대인들의 메시아에 대한 의심과 반목으로 비화될 것입니다(바로 다음 단락에서 예수에 대한 주된 대적 세력으로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이 벌써 예수의 신성과 이적을 귀신의 왕을 의지한다고 비하시킵니다). 그것은 아직 예수가 소명으로 받은 , 일을 이루시기까지 아직은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경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이제 점차 글에서도 예수에 대한 호칭에 존경어를 붙이기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당신의 치유 능력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던지는 경우는(“믿느냐?”) 오로지 이곳에서만 발견됩니다. 예수가 그들에게 질문은 29절의 말씀과 더불어 믿음의 중요성을 가르치시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고 해석되어야 것입니다. 예수는 믿음의 필요성을 항상 강조하였습니다. 예수는 이적을 행한 참된 목적도 믿음을 일깨우고 더욱 굳세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 두셨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예수의 소문이 맹인들의 입을 통해 지방에 두루 퍼지게 됩니다. 그들이 앞서 예수께 메시아란 칭호를 사용했지만, 그들의 행동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참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드러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의 사역이라는 문제에 비하면 그리 중요하다고 없는 메시아 대망(유대인들은 그들이 고대하는 메시아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한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이 그분의 사역 초기에 너무 일찍이 회자됨이 예수의 사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사건이 비밀로 남는 것은 환희에 들뜬 소경들의 마음이 허락할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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