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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전적으로 성경 읽기
마태복음부터 처음 읽기/마 8:1-34

마 8:28-34 귀신 들린 두 사람을 고치시다

by pooh_in_the_Way 2021.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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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8: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마8: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마8: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마8: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마8:32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마8: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마8: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배에서 내렸습니다. 내린 곳은 갈릴리 호수 건너편 가다라 지방이었습니다. 가다라는 갈릴리 바다 최남단의 구릉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부근 지역은 갈릴리 저편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인구가 덜 조밀합니다. 게다가 이곳은 이방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떼지어 몰려드는 무리들에게서 물러나 계시기에 좋은 여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곳에 도착하자 곧 “무덤에서 나오는 귀신들린 자 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가다라는 큰 묘지가 있는 곳으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 무덤들 가까이, 당시 주민들의 미신으로는 귀신들의 거처 가 있었다는 불결한 지역에 귀신 들린 자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바다 가운데에서 광풍이 몰아치는 것과 같이, 귀신들에 의하여 몰아침을 받아 사나웠습니다. 두 사람은 시체가 있는 무덤에 거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두 사람은 귀신의 처소가 된 것입니다. 그들의 사나움은 공동체에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이 귀신 들린 자들이 예수를 보자 소리 질러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이들은 마귀의 권세 아래 있기에 대번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챘습니다(마태복음 4:3-11에서도 마귀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그 귀신들은 주님을 알아채자마자, 즉시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의 임재로 말미암아 그들이 있을 곳은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한 불쌍한 사람을 참을 수 없게 괴롭혔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에게는 자기들을 괴롭히지 말도록(아마도 그들을 멸하지 말도록)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에게 탄원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하나님의 아들을 잠잠하게 하려고 구하였습니다.

 

이 귀신들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몇몇 주석가들은때가 이르기 전에라는 말씀이예수님의 권세가 이방나라에 계시되기로 되어있는 때가 이르기 전에 의미를 갖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돼지 떼"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당시 가다라는 이방나라였고, 예수의 임무는 오직 이스라엘에만 주의 권세를 계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생각할 구절의 중심 단어는 "여기" 이방 나라에 됩니. 보다 확실한 것은, 이 귀신들이 그나마 이방나라에 남아 있을 있는 때를 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땅에 남아 있을 있는 때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종말은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상 귀신들은 예수가 자기들을 쫓아낼 권세에 대하여는 논쟁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사단의 통치가 끝날 그 시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들어 호소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귀신들에게는 예수 안에서 완성되어 가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과정에 관한 깊은 통찰력이 있음을 드러났고, 이러한 통찰력이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부족하였음이 대조됩니다.

 

귀신들은 해법을 스스로 찾았습니다. 사람들 안에 자신의 처소를 마련할 수 없게 되자, 이제 가까이 있는 돼지 떼로 보내 주시길 몹시 간청하였습니다. 귀신들은 자기들이 지배하고 있던 그 두 사람을 떠나야 할 것으로 느꼈습니다. 아울러 귀신들은 예수님의 승락없이는 그 돼지들에게도 침범할 수 없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만일 우리를 쫓아내실찐대 돼지 떼에 들여 보내소서”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예수가 그 귀신들의 간청을 승락했습니다. 귀신들이 그 사람들에게서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돼지 떼에게 들어가는 것만큼은 허락받았습니다. 귀신들이 호소한 바와 같이 아직 그들이 멸망받을 때가 아직 이르지 않은 이유입니다. 귀신들이 돼지에게로 들어가자, 모든 돼지들이 돌연히 겁을 먹고 가파른 둑방 아래로 급히 치달아 바닷물에 몰사하였습니다.

 

예수의 이 사역은 그에게 사단을 지배하는 권세가 있음을 나타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이적들은 아직 이르지 않은 때에 대한 서곡이요 보증일 뿐입니다. 피조물이 새롭게 되는 일이 현 단계에서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것은 필연적인 일인데, 그 이유는 인간의 죄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때를 정해두셨기 때문입니다.

 

돼지 치던 자들이 그 돼지들이 몰사하는 것을 보고서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그래서 시내로 달려가 목격한 일들을 “귀신 들린 자의 된 일과 함께” 전하였습니다. "온 시내" 즉 그곳의 주민 대다수가 이 소식을 듣더니, 예수에게 자기 지역을 떠나줄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예수에게 간구했다’는 것을 보면, 그들이 이렇게 한 데에는 예수의 권세를 두려워한 이유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된 동기는 많은 돼지 떼를 잃고서 화가 났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께 이 일에 책임을 지라고 명백하게 요구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호소 뒤에는 그런 것이 내포되어 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 지역 주민들은 무엇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즉 자기들의 짐승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을 구할 것인가, 돼지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예수를 택할 것인가의 문제에 직면한 것입니다. 그들은 전자를 택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그 가다라 지방을 떠났습니다. 그 주민들이 원하는 바를 갖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이 이야기의 요점은, 산상수훈에서처럼 사람들을 가르치는 권위를 가지신 예수가 가까이 있는 질병과 멀리 있는 질병 모두에 대해서도 권위를 가지며, 예수를 따르기 원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권위를 가지시며, 또한 폭풍우 치는 바다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거나 설명하건 간에 어두운 악의 세력에 대해서도 권위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제 예수를 따르기로 결정할 때 알아야 하는 사실입니다. 예수는 물리적인 세계에서든 비물리적인 세계에서든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권위를 가진 분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삶의 모든 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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