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통전적으로 성경 읽기
기독교 서적 속에서 TALK POINT 뽑기/단편들 모음

몸의 변혁적 현실 - 부활절의 의미

by pooh_in_the_Way 2021. 3. 29.
728x90

마커스 보그/톰 라이트의 《예수의 의미》(한국기독교연구소 발간)에서 발췌

 

7장 몸의 변혁적 현실

 

 

 

 

부활절의 의미

 

나는 부활의 의미 설명하는 수많은 경건한 설교들을 들어보았는데,  설명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못한  같았다. 예를 들어, 나는 예수의 부활이 죽음 이후의 삶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라는 설교를 들었다. 이런 생각은 분명히 처음 기독교인들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죽음 이후의 삶을 믿고 있었으며, “죽음 이후의  이후의 부활(resurrection  after ‘life after death’) 믿고 있었다. 그들에게 예수의 부활은 하느님, 이스라엘, 그리고  세상의 이야기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뜻했다. 예수의 부활은 단순히 개인의 미래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역사와 종말론  관한 것이었다.

 

나는 또한 부활이 예수가 지금 살아 계시며 우리가 그와 관계 맺을  있다는 것을 뜻한다는 설교도 들었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부활의 특수한 진리는 아니며, 또한 복음서 기자들과 바울이  부활절로부터 읽은 의미도 분명히 아니다. 그것은 사실상 요한의 렌즈를 통해  오순절(Pentecost) 진리,  예수는 그의 백성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의 영을 통해 그들에게  것이라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부활한 그리스도(the risen Christ) 이제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28:20) 계시지만, 이것은 부활 사건 자체의 내적인 의미가 아니라, 부활의 사실에 의해 가능하게  앞으로의 약속이다. 만일  이야기들과  명백한 육체성(embodiedness) 의미가 육체로부터 분리된 현존(disembodied presence) 뜻하는 것이라면, 그들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매우 불행한, 거의 자기 모순적인 방식을 택했던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부활의 의미는 바울이 로마서 1:4에서 말한 것처럼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인 창조주가 예수는 실제로 그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언하였다는 뜻이다.(10 참조) 그러므로 그것은 그의 십자가 처형에서 완성된 그의 메시아로서의 성취를 받아들이고 확인하는 것을 뜻한다.  그의 부활은 십자가가 패배가 아니라 승리였음을 선포한다. 바로 이런 관점이 골로사이 2:14-15 특히 고린토전서 15:17,  만일 메시아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은 무익한 것이며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안에 있다는 말씀의 기초가 되고 있다. 죄가 실제로 처리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은 바로 부활이다. 물론 기독교의 진리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들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과거의 사건들을 제거하면 진리의 다른 층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부활의 가장 심층적 의미는 새로운 창조와 관계된다. 만일 부활 이야기가 어떤 것에 대한 은유라면, 그것은 하느님의 새로운 세계가 태동하기 시작했다는 믿음에 대한 은유이다. 예수가 부활절 아침에 무덤에서 일어나 변형될 ,  사건은 엄청난 상징적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서, 이것에 대해 복음서 기자들이 관심을 쏟았으며 자신들이 말하는 것의 역사적 성격으로부터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새로운 주간의 첫째 날이었으며, 길고  밤이 지난 다음의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 순간이며, 화해를 위한 새로운 만남, 새로운 식사의  간이었고 새로운 위임을 받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었다.

 

그러므로 부활은 개인들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를 위한 미래에 대한 희망의 표징(sign of hope for the future)이었다.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분명하게 보았던 것처럼, 모든 피조물들이  출애굽을 시작하고,  부패와 쇠퇴, 소멸의 노예를 벗어나게  것에 대한 표징이다. 신약성서에는 죽음 자체가 폐기될 세상, 살아 계신 하느님이 모든 사람의 눈물을 씻어줄 세상이  것에 대한 약속들이 많이 있다. 부활에 대한 개인적 희망은 모든 피조물의 갱신, 하느님의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God’s new heavens and new earth)이라는 보다 큰 희 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몸의 부활을 제거한다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겠는가? 개인적 영성은 죽음 이후의 육체로부터 분리된 삶에 이르는 것으로 발전하였는데, 이것은 우리들 자신의 몸을 포함하여 모든 피조물의 선함을 부인하는 것이다. 만일 예수의 부활이 그의 몸을 포기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정말 잘못된 은유적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런 희망 때문에, 예수의 부활은 현재의 시간이 매우 중요한 순간임을 뜻한다. 현재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일은 하느님의 미래를 건설하는 일이다. 정의와 자비의 행동,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진리를 기뻐하는 , 사랑의 행동과 친절과 용서의 공동체를 만드는  등은 모두 중요하며 영원히 중요하다. 부활을 제거하면, 이런 모든 일들이 현재를 위해 중요할 뿐이지 미래와는 상관이 없으며, 결국에는 현재에도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금과 은과 모든 보석들로,  하느님의 새로운 시대 속에 영원히 지속될 것들로,  미래를 건설하는 소명에는 거룩함의 소명이 들어 있다.  하느님의 형상(image of God) 반영하는 인간의 삶이 거룩하게   있는 것은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의 승리를 통해서이며, 공동체와 개인들 속에 임재하는 부활한 예수의 영에 의해 거룩할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면, 위에 있는 것을 찾으라.” 하느님의 선한 창조와 그의 이미지로 만들어진 피조물들을 파괴하는 모든 비인간적 행동, 분노와 정욕, 탐욕과 교만을 없애라.( 1:1-11) 그래서 부활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다.  부활은 전체 세상과 지금  아니라 지금 이후에  곳에 살게  모든 존재를 위한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준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