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워셔] 부활 신앙의 근거
23 부활 신앙의 근거
원수들의 회심
회의주의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분의 부활 이후에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반대하고 그분의 제자들을 박해하던 사람들이 회심한 사실도 아울러 설명해야 한다.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를 극렬하게 반대하던 사람들, 특히 예수님의 형제들과 악명 높은 다소의 사울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변화될 수 있었겠는가?
성경은 예수님이 사역하시는 동안, 야고보와 유다가 믿기는커녕 그 분의 사역과 인격에 공공연히 반감을 표출했다고 증언한다(요 7:3, 4). 예수님의 가족들은 그분이 “미쳤다”고 생각하고, 집에 데려와 붙잡아둘 요량으로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막 321).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이후, 이 두 형제는 완전히 변화되어 초대 교회의 지도자로 거듭났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서신서에서 그리스도께 헌신하고, 그분의 주권에 복종한다는 내용의 글을 적었다. 그 글에서 자신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했다(약 1:1, 유 11). 그들은 적대적이고 믿지 않는 자에서 주님께 삶을 헌신한 충실한 종으로 변화했다. 부활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런 변화가 가능했겠는가? 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했다(고전 15:7).
극적인 회심을 통해 사도들이 전한 부활 메시지에 무게를 실어준 또 한 사람의 적대자가 있었다. 바로 다소의 사울이다.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 따르면, 사울은 초기 기독교의 가장 극렬한 박해자였다. 무지와 불신앙에 휩싸인 그는 나사렛 예수를 사기꾼이자 신성모독자라고 확신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감옥에 갇히거나 처형 당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딤전 1:13, 고후 5:16). 그는 스데반이 죽임 당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겼던 사람으로 사도행전에 처음 등장한다(행 7:58, 8:1).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 모습으로 대제사장을 찾아가서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올” 생각으로 그에게 공문을 요청했다(행 9:1, 2). 그러나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완전히 변화되었다. 그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메시아라고 확신하고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후 즉시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이들이심을 전파했다”(행 9:18-20). 이것을 본 동료 유대인들은 모두 크게 놀라며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 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고 말했다(행 9:21).
기독교 신앙을 박해하던 사람이 한때 그렇게 없애려고 안간힘을 쓰던 그 믿음을 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유대 지역에 있는 모든 교회에 신속히 퍼졌다(갈 1:22, 23). 그러나 사울이 극렬하게 교회를 핍박하던 인물이었던 만큼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그와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그를 두려워했다. 그러던 중, 바나바가 사도들에게 그의 회심이 사실이라고 말해 주었다(행 9:26, 27). 기독교의 가장 큰 적이었던 다소의 사울은 마침내 기독교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요 전파자로 변화했다. 윌리엄 닐은 이렇게 말했다.
나사렛 예수의 추종자들을 극렬하게 핍박하던 사람이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육체적으로는 눈이 멀고 정신적으로는 완전히 압도당한 채로 다메섹에 들어갔다. 그는 몸과 마음이 회복되자 즉시 자신이 없애려던 신앙을 가장 열렬하게 옹호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회의주의자들은 사울의 회심과 극적인 삶의 변화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 이유를 적절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교회는 2,000년이 넘도록 아직도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