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11:27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막11:28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막11: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막11:30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막11:31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막11:32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
막11: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고난주간 화요일에 있었던 일들
- 무화과나무 마름(마 21:19-22, 막 11:20-25).
- 제사장 바리새인의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질문(막 11:27-33, 눅 20:1-8).
- 경고의 세 가지 비유, 포도원 농부의 비유(마 21:28-22:14, 막 12:1-12).
- 바리새인과 헤롯당이 예수께 질문(마 22:15-40).
- 메시야에 대한 예수의 질문(눅 20:41-44).
-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 책망(막 12:38-40).
- 과부 연보에 대하여 칭찬함(막 12:41-44, 눅 21:1-4)
- 유대인이 예수를 배척함. 예루살렘 멸망과 말세를 예언함(눅 21:5-38, 요 12:37-50).
1
예수가 이제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성전 정화 사건으로 종교 지도자들의 분위기가 긴장 속으로 고조됩니다.
막11: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이튿날, 그들은 또 다시 성전에 나타난 예수에게 적대적인 논쟁을 펼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바와 같이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하는 이 질문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을 관할하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허가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성전에 나타난 이 갈릴리 출신의 예언자에게, 이제까지 자신들의 권위로 다스릴 수 있다고 믿었던 군중들을 빼앗긴 것으로 보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외부인인 예수가 그들의 능력과 권위를 찬탈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당장 예수를 해칠 계획을 수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11:18에서, "어떻게 죽일까 하고"꾀하기 시작하였던 계획말입니다.
성전에서 영구적인 봉사의 직무를 가진 대제사장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율법을 보존하고 해석하고 교육하는 직무를 가진 서기관들, 그리고 부유한 관료 출신의 평민들인 장로들, 이들은 바로 예수가 이전에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예고했던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8:31). 그들이 묻는 것입니다.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이런 일"은 성전에서 예수가 한 그의 행동과 관계가 있고, 그의 가르침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요한복음 2:18). 그들은 예수가 어떤 권위로 그들이 독점적인 권위를 가진 제의적 체제를 공격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그러면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라는 질문을 다시 던짐으로써 답을 대신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증거하기 위하여 먼저 태어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부름에 응하여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고 회개하는 역사를 시작하였던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세례요한은 험한 말을 하여 심판을 경고했죠.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들을 회개하여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라는 무시무시한 독설을 퍼부었으니까 충돌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러나 일반 유대인들에게는 세례 요한은 진실한 예언자였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지지를 했기 때문에 세례요한을 어떻게 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스스로 예수의 사역을 위해서 앞서 온 자라고 스스로 이야기했습니다. 세례요한이 비록 잡혀 옥중에서 죽었지만, 그를 보낸 이가 하나님이냐 아니면 스스로 한 것이냐, 라는 질문에 대하여 지금 여기에서 쉽게 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들이야, "그가 하나님의 종이었다"라고 대답하기 싫지만, 그걸 거부했다가는 백성들에게 어떤 해를 당할지 모르니까 그렇게 답을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종이었다고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느냐 라고 추궁을 당할 뿐만 아니라 그와 긴밀한 관계성을 가진 예수를 믿지 않느냐는 난처한 추궁 역시 받아야 하는 대답이 될 것입니다. 결국 "알지 못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 했다"는 것은 결국 지도자들이 하늘을 두려워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권위가 오히려 인간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드러내는 꼴이 됩니다. 그들은 예수의 질문을 피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권위가 없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전 파괴의 징조들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예수는 이제 그들에게 직접 대답하시지 않고 다만 비유로만 대답하실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외부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악한 소작농 비유(12:1-12)에서 예수의 대답이 그들이 성전을 차용하고 있다는 암시적으로 위협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이해하지만, 열매를 제공하고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는 일과 관련한 의미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그럼 나도 답할 수 없다"라고 이야기함으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낸 메시아인 것을, "저희들에게 드러내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저들이 거부하기 때문이다" 라고 여기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2
교회의 정체성은 세상과 전혀 다른, 아주 분명한 두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교회는 그 특징상 공포가 없는 곳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 특징은, 자격이 요구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는 공포가 있을 수 없는, 그리고 자격이 요구되지 않는 은혜와 자비와 용서와 회복의 장소요, 하나님이 그것을 위하여 허락한 성전이었고, 교회입니다.
원래 성전이 지어진 때에도 그랬고, 그렇게 예표되고 상징화 됐던 것 그 실체가 예수 안에서 이루어짐으로써,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던 모든 죄를 하나님이 속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안에서 부르십니다. 거기에는 어느 곳에도 공포와 자격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차원, 죄도 우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막지 못하기에, 세상의 어떤 권력으로도 방해 받지 않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허락받았다는 것이 모든 현실과 인생과 그리고 역사와 운명에 대한 궁극적인 답이라는 것을 아는 자만이 비로소 대인관계에서 피차 복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무슨 세상적인 힘과 판단을 가지고 상대와 관계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거기가 교회입니다. 거기가 예수 믿는 자들이 모여 함께 찬송하며 예배를 드리는 곳이요, 그래서 감사와 복종이 동시에 공존하는 곳이 될 수 있는 곳입니다. 세상의 도전과 시험이 내가 섬기는 하나님,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로 인하여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확보되지 않는 한, 교회의 영광과 하나님의 자녀된 빛의 직분은 실천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