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장 11절까지는 예수가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 흥미를 끌만한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먼저 예수가 마귀(여기 '마귀'에 방점을 찍습니다)에게서 시험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수세 사건으로 예수의 신분이 확인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유대인의 인식 속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은 동격입니다. 아버지의 모든 것이 그대로 아들에게 승계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마귀에게서 시험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유대교 전승에는 이런 유의 이야기가 없습니다. 마귀(헬라어로 디아볼로스, 또 다르게는 사탄[히브리어, 헬라어로는 사타나스]으로 표기됩니다)는 끊임없이 인간을 미혹하는 영적 존재로 생각하면 됩니다. 창세기에서는 하와를 유혹하였고, 욥기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 욥을 참소하는 자로 등장합니다. 마귀 또는 사탄은 역시 피조물이되, 타락한 천사 또는 천사장으로, 하나님이 계획하고 하려는 일을 적대하는 자입니다.
두 번째로, 이 일을 위하여 예수가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갔다는 것입니다.(여기 '성령'에 방점을 찍습니다)
성령은 이번으로 마태복음에서 네 번째 등장합니다. 요셉에게 나타나 마리아의 임신에 대하여 성령으로 수태된 일이라고 설명해 준 일, 세례 요한이 뒤에 오실 이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는 이야기, 예수가 세례를 받고 뭍으로 올라 올 때에 비둘기 같이 성령이 예수 위에 내린 일입니다. 그리고 여기 광야로 예수를 이끈 일입니다. 성령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창세기 1:2에서 창조 세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현존과 능력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현존이라함은 하나님이 곧 창조 세계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동일한 성령이 사람에게 들어가서, 하나님의 현존과 능력이 나타나, 특히 예언자에게 들어가서 그들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게 했습니다. 예수는 수세 사건 이후 성령을 받으면서, 그 결과 놀라운 공적 사역이 따릅니다. 예수의 부활 사건 이후에는 예수의 제자들도 성령을 받게 되는데, 성령은 이제 예수 자신의 영과 동일시됩니다. 곧 창조주 하나님이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시면서 이 세상과 제자들 역시 새롭게 고치신 것입니다. 성령은 토라로는 불가능했던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며, 삶 속에서 열매를 맺게 하며, 하나님과 세상과 교회를 섬길 은사를 줍니다. 그리고 미래의 부활에 대하여 확신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기독교는 아주 일찍부터(예수 사후 가장 먼저 쓰여진 성경이 갈라디아서입니다. 복음서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인 선교를 시작하면서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한 때가 40년대 후반입니다. 그러니까 갈라디아서는 50년 전후에, 복음서 중 가장 이른 마가복음은 60년대후반에 쓰여졌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새롭고 혁명적인 정의를 봅니다. "아들과 아들의 영을 보내시는분"(갈라디아서, 4:1-7).
이 4장의 이야기는 바로 앞의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이야기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두 이야기의 연결고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가 세례를 받으신 직후에 일어난 놀라운 사건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해 주었고 이 같은 예수의 신분은 앞으로 전개될 그의 소명과 직결됩니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제 예수는 새로운 이스라엘 [민족, 백성]을 만들어가는 대표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 상황에서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 그는 예컨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요구되던 자질들, 즉 신뢰와 순종 그리고 신실성을 나타내 보이실 것인가? 하나님의 창조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져 하나님의 영광을 담지했던 첫 인류 아담과 비교되는 것입니다. 아담은 사탄의 유혹에 실패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이 단락이 묘사하는 정경은 광야에서 방황하던 이스라엘이 처해 있던 상황과 흥미로운 대비를 이룹니다. 이집트에서 구출될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출애굽기 4:22)라고 불려졌습니다. 그들은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모진 시련의 시기를 맞게 됩니다. 이 광야로 들어감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알려 하심이라."(신명기 8:2).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궁극적인 원인으로 존재한다는 유대인의 신념으로는 '이스라엘을 광야로 이끌어내어 모진 시험을 받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고 믿었습니다.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유대인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이 시험에서 승리함으로써,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아들로서 성령이 충만함을 입증합니다.
예수가 시험하는 사탄에게 한 대답도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체험한 일들을 기록하고 있는 신명기 6-8 장에서 인용한 것이라는 사실은 예수와 이스라엘 사이의 대비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모든 소망을 실현시켜 주실 분으로서, 예수는 이스라엘의 체험을 당신 자신의 삶 속에서 다시 한 번 재현합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시험을 극복하지 못했던 반면, 예수는 이 시험을 당당하게 극복함으로써 자신이 아버지께 순종하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분명히 입증합니다.
마태는 이 이야기가 예수의 사역에 관한 이야기에서 매우 중요한 서론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에 의도적으로 이 곳에 배열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대한 예수의 순종(이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정한 징표이다)이라는 주제는 이 복음서에서 나중에 다시 다루어지게 되지만, 마태는 서두 부분에 이 주제를 분명하게 밝힘으로써 이 복음서 전체의 기조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우선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요단 강에서부터 걷기 시작한 길, 그 길의 최종 목적지는 십자가입니다. 마귀는 그 일이 목표나 방법에서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예수가 와서 하여야 하는 일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속하는 것입니다. 죄 아래 있는 인류를 꺼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죄 아래서 꺼내어 어디로 데려 가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보내어지듯이 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을 대표로 하여 아담의 후손으로 그 신분이 묶여져 있었습니다. 예수의 메시아직으로 하여야 하는 일은, 죄와 사망 아래 있는 아담의 후손을 꺼내어 새로운 인류 곧 '예수의 후손'으로 만들어내기 위하여, 그들의 처지 가운데 와서 그들과 자신과 묶어(동일시,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들을 이끌어, 그리고 그들을 대표하여 사탄의 유혹을 이기어(이 일에는 절대적으로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함께 나아가 최종적으로 예수가 이끄는 새로운 인류가 하나님과 영생하는 일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맨 마지막 절,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의 메시아직의 듬직함을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