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은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세례라는 유대교 전통 의식을 베풀었습니다. 요한의 세례의 기원에 대한 정보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종교 의식적 씻음(특히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 행한 정결의식, 쿰란의 정결 의식, 개종자의 세례 등 세례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제안들이 있습니다. 유대교 개종자들은 세례를 통해서 의식상 정결하게 되어, 이를테면 언약의 아들로 입양되는 셈입니다.
세례 요한의 등장은 누가복음에서 보다 자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되던 때"(눅 3:1), 서기 27년 경에 자신의 예언자적 소명을 받았던(눅 3:2,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장소인 유다 광야에서 성년기를 보냈던 것으로 보입니다(눅 1: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그는 광야 시절 동안, 세상과 분리하여 광야에서 살아가던 쿰란 공동체나 이와 유사한 에세네파 공동체와 어떤 식으로든지의 관계 속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쿰란 공동체는 토라에 대한 열성으로, 거의 수도원적인 은거생활을 집단적으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고대하여 회개와 세례 의식을 반복하였으며, 광야에의 메시아의 도래의 임박성을 믿었기에 자신들의 거처를 사해 주변 광야에 정하였습니다. 쿰란은 사해 북서쪽의 건천[와디]과 그 근방의 고대 폐허 지역으로, 1955년 즈음에 성경의 사본들[사해 사본으로 명명됩니다]이 발견되어 그 본거지가 확인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내[세례 요한]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고 예고함으로써(마 3:11), 그가 베푸는 세례는 종말론적이고 일회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더불어 수도원적인 은거 생활을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쿰란 공동체만큼 토라에 대한 열성을 나타내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쿰란 공동체와의 차이점이 보입니다.
요한의 모습을 묘사한 마 3:4에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다"는 것은 열왕기하 1:8("그는 털이 많은[털옷 입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의 기사 내용을 연상케 하여, 엘리야의 모습과 거의 같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의 아버지 사가랴가 천사로부터 받은 아들의 소명을 마음에 새기도록 들었을 것입니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눅 1:17), 아마 그의 생애를 걸쳐 온전히 엘리야가 되려고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분명 예언자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곧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습니다(눅 3:3). 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마치 여태껏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렸음을 인정할 것과 마치 생전 처음인 것처럼 그분께 나아올 것을 촉구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들은 사실상 하나님과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백성은 회개하고, 즉 하나님이 약속하신 종말론적인 구원을 기대하며,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그리고 하나님이 시작하시는 일에 새로운 언약의 백성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스스로를 정결케 하는 일로 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런 일은 처음으로 시작하는 곳에 의미가 있습니다. 지리적 위치가 상징적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요단 강에서 세례를 준 것은, 천여 년 전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요단을 건너기 직전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이곳으로 돌아온 것은, 이스라엘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이는 (오랫동안 등한시했던) 원래의 임무를 수행하라는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을 나타냅니다. 세례는 죄에서 깨끗케 되었음을 나타내는, 이 새로운 시작의 생생한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깨끗케 되어 다시 자신들의 임무를 맡을 준비를 하고 (상징적으로) 요단 강을 한 번 더 건너 그 땅으로 들어가고 있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