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3: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단순한 한마다는 심각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왔느니라. 예수님도 얼마 후 같은 메시지를 선포할 것입니다. 불행히도 이 말씀은 우리에게 수수께끼입니다. 도대체 요한은 무슨 뜻으로 천국(혹은 하늘 나라, 약간의 의미상의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 나라')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했을까? 그리고 그 말씀이 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가? 예수님을 왜 같은 메시지를 선포하셨는가?
N. T. 라이트는 말했듯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청중이 ‘그 이전까지의 이야기’ 즉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알고 또 그것의 종결을 기대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청중들은 맥락, 즉 이 드라마의 이전의 막들을 알고 있는 것으로 전제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는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고 왜 그것을 기다려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청중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이 말씀은 수수께끼일 뿐입니다. 이방인이라면 누구도 그 구절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의 개념이 아닙니다. 호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부분에 대해 조금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정통 유대인만이 요한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 지식을 소유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그들은 마치 전기 충격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일생 동안 기다려 온 바로 그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까지의 이야기’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아브라함, 모세, 다윗을 사용하여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셨는지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분의 보호 아래 사는 삶에 관한 소망을 주셨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은 아브라함이 장막 옆에서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처럼 번성케 되리라는 약속을 받는 모습을 그리도록 교육받았습니다. 유대 어린이들은 애굽의 노예였던 선조들이 바로의 군대에서 벗어나 광야로 달려 나가며 갈라진 홍해를 건너던 이야기를 들을 때, 가슴에서 무언가 벅차오르는 느낌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연기 그윽한 시내산 중턱에 앉아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이 담긴 돌판을 들고 내려오기를 기다렸듯이, 유대인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또 그들은 미래의 왕,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에 맞서 이제 겨우 막 생겨난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외세의 침입에서 구할 때, 그 옆에서 함께 싸우는 모습을 상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신학적 단어의 조합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거기엔 비극적인 면도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오용하는 행위를 중단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잃을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너무도 끔찍한 예루살렘의 멸망 이야기, 성전이 불타 버린 사건, 바벨론 포로 사건, 이스라엘 왕들이 죽거나 고문당한 이야기가 그 일부입니다. 이스라엘의 이런 민족적 수치는 예수님 시대까지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였다가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정치적으로는 독립하지 못했습니다. 다시는 다윗의 후손들이 왕으로 다스리던 ‘나라’를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생애로 말미암아,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빠졌던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는 다시 균형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은 여전히 억압받고 포로 생활을 하며 죄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보호자로 남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을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며,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대적을 심판하시는 최종 결말을 내다 보며 이야기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다시 보좌에 앉아 나라의 번영을 이루고, 전 세계가 이스라엘 앞에 굴복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거라고 선포했습니다. 작은 이스라엘이 온 세상을 평강으로 다스릴 것입니다. '그때는 어린 양과 사자들이 함께 다정히 누울 것이다. 칼을 쳐서 쟁기로 만들 것이다. 나무가 손뼉 치고 바다가 노래하고 온 세계가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시대에서 하나님은 반역하는 흑암의 권세를 심판하고 질병과 죽음을 멸하실 것이다.' 많은 유대인은 죽은 자들의 몸이 부활하고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온 이스라엘이 함께 큰 축제를 벌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외세의 지배를 받는 가난하고 억눌린 나라로 남도록 계획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열방의 중심이 되도록, 그리고 그분이 그들의 중심이 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하나님은 아직 그 계획을 이루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이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결정적인 시점에 요한이 등장합니다. 누가복음 1장에 의하면, 요한은 그의 아버지 사가랴에게서 그의 소명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의 출생 이야기 역시 우리의 관심을 끌고도 남습니다. 그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오는 자"이었습니다. 그는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게 하는 자였습니다. 광야에서 경건한 삶을 살던 그가 움직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획 대로 그의 뒤를 이어 올 자가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는 일을 시작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의미의 설교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변함없는 방식을, 그저 일반적인 관점에서만 이야기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충격적인 새 소식을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그날이 도래했다고 외쳤습니다. 이 선포는 조금이라도 믿음이 있는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경청할 만한 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