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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전적으로 성경 읽기
마태복음부터 처음 읽기/마 24:1-51

마 24:29-31 성전의 파괴

by pooh_in_the_Way 2022.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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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마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24: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앞서 몇 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전통적 해석이 가장 불편하게 여기는 부분은 29절 이하의 내용입니다. 15-28절은 예루살렘 포위을 가리키며(‘파루시아’에 관한 내용을 담은 27절과는 별개로) 29-31절은 “파루시아세상 끝”을 가리킨다고(본문에는 이러한 용어가 사용되지 않지만) 생각한다면, 예수께서 ‘파루시아’가 실제로 AD 1세기 후반에 일어날 것으로 예언했으나 착오였다고 주장하지 않는 한, “그날 환난 후에 즉시……”라는 서두에 대한 해석은 엄청난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많은 해석가들은 먼 미래의 사건들을 하나의 시간적 틀 속에 넣는 “선지자적 관점”이라는 모호한 표현에 호소하며, 다른 사람들은 “…후에 즉시”나 “그날”이라는 표현에는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에서의 해석은 본문의 시간적 흐름을 있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즉 예수는 어느 때에 성전이 멸망할 것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실제적 “징조”로 볼 수 없는 과도기적 사건들을 언급한 후(4-14), 이어서 “끝”이 가까움을 보여 주는 실제적 징조, 즉 멸망의 가증한 것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로마 전쟁과 예루살렘 포위에 대한 묘사와 “그날[](19, 22에서 두 차례)에 대한 반복적 묘사로 이어지지만, 성전의 멸망이라는 실제적 절정에 이르렀다는 언급은 제시되지 않습니다. 이 절정은 29절에 와서야 “그날 후에 즉시…”라는 표현과 함께 시작됩니다. 34절에 제시된 구체적인 시간표는 이 모든 일이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두 이루어질 것임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35절까지 제자들의 첫 번째 질문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에 대한 대답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며, 36절 이후로 앞서 27절에서 잠시 예고되었던 두 번째 질문(“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에 대한 대답이 제시됩니다.

 

이러한 분석 아래에서, 29-31절은 예수가 구약 성경의 생생한 묘사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성전의 멸망이라는 결정적 사건 및 인자로서의 권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언급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통치하신다는 지금까지의 지상적 초점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웁니다. 29-31절의 어법은 대부분 구약 성경에 대한 암시로 구성됩니다.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두 개의 축어적 반복은 이 구절의 서두와 15-28절을 밀접하게 묶습니다. “환난”은 21절의 포위 기간 중 하나님의 백성이 경험한 사건에 사용된 용어를 반영하며, “그날”은 19절과 22(두 차례)의 언어를 취합니다. ~후에 즉시”는 이 연결을 더욱 단단하게 결속합니다. 두 사건 사이에 어떤 시간적 간격도 없습니다.

 

처음 두 행은 이사야 13 10절에서 온 것입니다.

 

사13:10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이곳의 단어들은 70인역의 어휘와 거의(첫 번째 절은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에서 “해가 어두워지며”로 재배열되었지만) 동일합니다. 같은 구절에 나오는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는 이곳의 두 번째 행과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후자는 이사야 34 4절과 더욱 축어적인 유사성을 보입니다.

 

사34:4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본문을 그대로 반복한 것은 아니지만, 70인역 이사야 본문은 하늘에서 별들이 떨어지고(“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 자체가 “두루마리같이” 말릴 것이라고 언급하며, 히브리어 본문은 하늘의 만상이 “쇠잔할 것”이라는 개념을 덧붙입니다. 이곳에 제시된 예수의 말씀은 이 두 이사야서 본문을 암시한 것일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구약 성경 예언에는 우주적 무질서와 어두움에서 나온 유사한 이미지를 사용한 다른 사례들이 있습니다. 에스겔 32 7-8, 아모스 8 9, 요엘 2 10, 30-31 , 3 15절 등입니다.

 

이들 본문은 대부분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이방 성읍과 나라들을 심판하시는 장면입니다. 요엘서의 경우 이 심판은 해를 캄캄케 하는 메뚜기 떼에 의해 이미 시행되었으며, 장차 있을 우주적 심판의 모델로 사용됩니다. 이사야 13 10절은 다가올 바벨론의 멸망에 우주적 언어를 사용하며, 이사야 34 4절에서는 “모든 나라들”에 대한 심판에 사용한 후 에돔에 대한 구체적인 심판이 이어집니다. 따라서 구약 성경 예언에 사용된 우주적 붕괴에 관한 언어는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격변에 대한 강조와 함께 하나님의 심판 행위를 상징합니다.

 

예수께서 이사야의 이미지를 사용했다면 유사한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러한 언어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바벨론이나 에돔의 멸망에 사용되었다면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심판과 권력 구조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바벨론과 에돔에 대한 이사야의 애국적 경고는 예루살렘으로 방향을 전환했으며, 하나님의 성읍은 이방 성읍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역할 반전이 8 11-12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메시지의 핵심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모스 8 9절과 요엘 2 10절에는 동일한 우주적 언어가 이방 나라가 아닌 이스라엘 남북왕국에 대한 심판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암8:9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내가 해를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하게 하며

 

욜2:10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이 언어는 터무니없고 강렬하지만, 이사야가 역사적 사건과 무관하게 사용하지 않았듯이, 예수의 사용한 언어도 역사적 사건과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언어가 (요엘에서 살펴본 것처럼) 종말론적 심판에 대한 언급으로 확장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그것이 본문이 요구하는 원래의 역사적 사건에 언급을 부인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이해에 기초할 때 29절은 제자들의 첫 번째 질문에 대해 마지막으로 상징적 언어로 대답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가 앞서 2절에서 산문적인 용어로 예언한 역사적 심판의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언적 이미지를 사용한 것은 독자로 하여금 멸망해야 할 것은 외형적 건물뿐 아니라 고대 바벨론에 비교되는 세력의 핵심임을 깨닫게 합니다. 이러한 세력 구조가 붕괴되면 다른 것이 그것을 대체해야 합니다. 따라서 30-31절에는 인자의 오심과 택한 자들을 사방에서 모으는 장면이 제시됩니다.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 절의 결론에 해당하는 마지막 구절은 다니엘 7 13절에 대한 반영으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평행구에서 우주적 이미지 후에 제시된 예언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마태는 그 전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일 것이며,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할 것이라는(후자는 슥 12:10-14를 암시합니다) 두 구절을 덧붙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다니엘 7 13-14절에 대한 암시의 중요성 및 이 언어가 적용된 범위에 대해서는 10 23절에서 재 확인합니다.

  

마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단7: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단7: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이 구절은 마태복음의 세 가지 암시(16:28; 24:30; 26:6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 가운데 하나에 해당합니다. 세 가지 암시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즉 세 본문 모두 “인자의 오심”에 대해 언급하며, 이 사건이 현장에 있는 자들이 살아 있을 때 일어날 것이라고(여기서는 “이 세대”) 언급합니다. 우리는 10 23절에서 다니엘의 환상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본문을 ‘파루시아’의 지상 임재가 아닌 하늘의 하나님께 “나아가” 다니엘 7 14절에 선언된 우주적 지배권을 받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 본 바 있습니다. 이 본문은 왕위 등극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오늘날 26 64절에 대해서는 이러한 해석이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적어도 이 구절이 미래의 특정 시기가 아닌 지금부터(“이후에”) 이루어질 사건임을 분명하게 언급한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곳의 인자의 “오심”을 관련 구절인 16 28절과 26 64, 또 앞서 언급한 대로 1023절 및 다니엘의 환상에서 통치권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로 “나아오시는” 이미지와 동일하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즉 백성의 지도자에게 버림받은 인자가 신원함을 입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왕권을 행사하실 때가 바로 성전의 멸망 시점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환상은 이런 식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다시 다니엘의 환상을 음미하자면, “인자 같은 이”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상징하며, 결국에는 회복되어 지금까지 그들을 괴롭혀 온 이방 나라를 정복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집합적 상징은 예수가 “인자”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 구절에서는 지금 왕권을 받으신 예수 개인에게로 초점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도 대적에게 의로우심을 드러내 실 것이지만, 지금 대적은 예수로 상징되는 백성의 지도자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인자이신 예수를 거부하고 살해한다면 그들은 진행 중인 하나님의 목적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참 백성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이 거부한 “인자” 개인에게서 발견될 것입니다. 즉 버림을 받았으나 정당함이 입증되신 메시아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왕권에 대한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의 공동체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31절에 묘사된 사방에서 모인 자들이 바로 이처럼 재구성된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인자의 왕위 등극에 이어지는 내용은 그의 나라의 백성들, 즉 “택하신 자들”(22, 24)을 모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유대는 물론 세상 곳곳에서 나올 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사방에서 모은다는 것은 구약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지만(8:11-12) 본문은 특히 신명기 30 4(하나님은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흩어져 있는 백성을 "모으실 것이다”) 70인역의 스가랴 2 6(하나님은 흩어진 백성에게 “내가 너를 하늘 사방에서 모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에 가깝습니다. “큰 나팔 소리”는 백성을 불러 모으는 또 하나의 예언인 이사야 27 13(“그 날에 큰 나팔을 불리니..”)을 반영합니다. 물론 원래적 문맥에서 이러한 본문들은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모을 것이라는 예언이지만, 예수의 강화는 이러한 구약 성경의 하나님의 백성에 관한 본문을 인자의 “택하신 자”에게 적용합니다. 우리는 8 11-12절의 구약 성경에 대한 암시에서 동일한 전형을 살펴보았습니다. “동서로부터” 온 자들은 더 이상 흩어진 이스라엘 지파가 아니라 백부장처럼 예수를 믿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자들입니다.

 

이들을 모으는 자는 “그의 천사들”입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 영광 가운데 계신 인자도 섬긴다는 개념에 대해서는 16 27절에서 확인합니다. 인간적 차원에서 택한 백성을 모으는 일은 파송받은 자들의 사역을 통해서이며, 이곳의 “천사들"은 그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다른 곳에서는(이곳과 동일한 다니엘 7장의 환상에 기초한 16:28을 포함하여) 영적인 존재들을 가리키며, 인자의 영적 권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곳 본문에서는 인간의 사역을 뒷받침하는 영적 권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태복음에만 나타나는 “큰 나팔 소리”는 이러한 모음의 초자연적 성격과 잘 어울립니다.

 

따라서 원래적 배경이 되는 구약 성경의 이미지를 기초로 해석할 때 29-31절은 성전의 멸망에 관한 예언을 두 가지 관점에서 조망합니다. 한편으로 이 사건은 성읍과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이전 심판에 견줄 수 있는 결정적 심판의 행위에 해당하지만, 여기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실패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본문은 다니엘 7 14절에서 선언된 우주적이며, 영원한 통치권을 받은 인자의 등극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본문은 부활한 예수가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날 때 현실로 이루어졌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따라서 예수가 제자들을 보내어 모든 나라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모으게 한 것은 이러한 권위에 기초한 것이며(28:19), 그 결과 훨씬 포괄적이고 새로운 “택하신 자들”이 지금까지 예루살렘과 성전에 맞추어졌던 하나님의 백성의 사역을 대신할 것입니다. 다니엘의 환상에서 보았던 것처럼 하나의 권력 구조가 사라지면 보다 강력한 다른 권력 구조가 들어서며, 이 새로운 구조는 성전에 모든 초점을 맞춘 기존의 체계가 결코 얻을 수 없었던 보편성을 가집니다.

 

견해를 지지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N. T. 라이트(Wright)입니다. 라이트는 24:29-31 묵시적 이미지를사회-정치적, 군사적 격변”(socio-political and military catastrophe)으로 이해하면서,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을 이스라엘의 배교와 부패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으로, 성전은 예수와 제자들로 구성된 성전으로 대체된 것으로 주장합니다. 라이트는 24:30오는(에르코메논)” 땅에서 하늘로올라가는동작으로 정의하면서 인자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신원받으며 하나님의 백성은 인자의 신원을 공유할 것으로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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