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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전적으로 성경 읽기
마태복음부터 처음 읽기/마 13:1-58

마 13:1-9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

by pooh_in_the_Way 2022.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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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3: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마13: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마13: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마13: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마13: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마13: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마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마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마13: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선포하신 말씀들을 마태가 주제별로 묶어 놓은 설교 묶음[강화], 가운데 번째 강화가 13장에 나옵니다. 천국 비유 강화(13:1~52)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에서의 예수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중단됩니다. 13장은 성경에서 제일 비유가 많은 부분입니다. 그리고 비유는 모두 천국에 관한 것입니다. 비유들은 천국이 어떤 곳이냐, 그런 가장 관심을 기울일만한 내용으로는 설명이 없습니다. 다른 시각, 11-12장의 분위기가 연결된 것으로 천국을 소개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절대 다수의 반대라는 분위기와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거기에 대한 설명으로 천국 비유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13장의 첫 비유, 소위 뿌리는 비유(18절 예수의 말씀에 따라. 비유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여러 가지 이름들이 시도되어 왔으나, 모두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해서 (붙여진 비유의 이름만큼이나) 의견이 분분합니다. 우선 강화에서 말하는 천국 비밀이란, 예수를 통해 주어진 천국 말씀을 영접하거나 거절하는 자들, 양쪽의 운명에 대한 내용입니다. 말하자면, 강화는 예수를 통해 주어진 천국을 영접하거나 배척하는이유 반응한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운명 연속되는 비유들로 설명합니다

 

1절, 마태는그날”, 같은 날이라는 언급과 함께, “”, 12:46-50에서 예수가 계셨던 곳으로 당시 예수는 가족을 세워 두셨는데, 이에 대한 언급을 통해 강화를 이전 내러티브와 밀접하게 연결합니다. 예수는 지금 참된 가족이라는 제자들의 특권에 대해 언급했으며 이곳의 강화도 이러한 특권에 대해 강조할 것임은 분명합니다. 배는 군중이 밀려드는 상황을 감안하면 편리한 강단의 기능을 합니다.

 

그리고 상징적으로는 예수와 제자들을 무리, 이미 이야기한 바를 적용하면, 12:46에서 밖에 있는예수의 가족처럼 제자들과 분리되어 있는 자들로부터 격리하는 역할을 하여, 공적인 가르침과 사적인 가르침을 구별하는 바탕이 됩니다천국의 감춰진 진리를 깨닫는 능력을 부여받은 것은 있는 "그들"(무리)가 아니라 제자들("너희")이며(11) 16-17절은 이러한 제자들 특권에 대해 강조할 것입니다. "너희"들에게는 은밀한 해석이 주어지겠지만 "그들"(무리)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며, 강화의 내러티브 전환(10, 36) 이러한 차이를 강조합니다. 도입구적 무대 배경에서 배는 이미 이러한 목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비유로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는데(크게 3개의 비유 묶음), 3절 하반절부터 소위 씨 뿌리는 비유가 시작됩니다.  여기에 붙여진 제목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뿌리는 비유”(18절) 단락 내러티브에 대한 정확한 묘사이기는 하지만 비유 해석에는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비유는 뿌리는 자나 씨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장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씨가 떨어진 가지 유형의 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개역 개정판의 단락 제목과 같이 가지 유형의 땅에 대한 비유입니다.

 

농경사회에서 농사에 관한 이미지를 비유에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염두에 두고 있는 씨는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중요한 작물인 밀이나 보리일 것입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의도와는 달리 어쩔 없이 밭의 경계를 넘어 떨어진 씨로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기술적으로는 씨를 뿌린 후에 땅을 갈아엎는 방법도 생각해 있지만, 경우 땅을 갈아엎어 씨가 묻히기 전에 새들이 와서, 결국 씨는 전혀 쓸모없이 버려진 것입니다.

 

5-6절,  번째 씨앗의 경우는 기반암이 얕은 갈릴리의 돌밭에서 농사하는 자들에게 익숙한 장면입니다. 흙이 얕은 땅에 뿌린 씨가 다른 땅보다 빨리 싹을 내는 이유는 정확히 없으나 장면의 초점은 이처럼 순조로운 출발과 해가 돋은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 타버린 상태의 대조에 맞추어집니다.

 

7절, 가시가 자랐다는 것은 이곳의 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보여 줍니다. 문제는 부적합한 땅이 아니라, 경쟁에서 나옵니다. 땅이 이미 점령되었고 새로운 식물의 성장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식물은 죽지는 않지만 햇빛과 양분을 얻는 경쟁으로 자라지 못합니다. 번째 씨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고, 번째 씨는 시작은 좋았으나 살아남지 못했지만, 번째 씨는 살아남았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씨를 뿌린 농부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8-9절, 이번에는 실패한 장면과 대조적으로 뿌려진 씨는 자라서 결실합니다. 결실한 양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삼십 만큼의 씨를 뿌려 30 분량의 수확을 거두었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지은 농사로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짐작하는 것처럼 발아된 묘목마다 삼십 개의 낟알을 맺었다는 뜻이라면 평균보다 못한 수준에 해당합니다. 경우 육십 배는 정상적인 평균 작황에 해당하며, 배는 매우 훌륭한 결실이지만 기적적인 작황까지는 아닙니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시리아 지역에서는 씨앗 하나가 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로마 지배 팔레스타인 시대의 정상적인 수확은 4-5배라고 주장하는 자료도 있습니다. 26:12에는 배의 수확이 하나님의 복을 나타내지만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기적으로는 제시되지 않습니다. 어떤 주석자는 배가인간의 모든 방법을 넘어서는 신적 선하심의 종말론적 풍성함으로 보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해석은 비판을 받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는, 좋은 토양은 그렇지 못한 종류의 토양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과, 좋은 토양이라고 하더라도 결실은 동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자도의 관점에서 보면, 제자들의 마음 상태에 따라 열매가 맺히는 정도가 다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비유는 문자적으로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에, 비유와 관련하여 비밀스러운 언급의 뜻을 분별하라고 도전하며, 모든 사람이 “들을 귀”가 있는 것은 아니며 계시를 받아들일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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