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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전적으로 성경 읽기
마태복음부터 처음 읽기/마 11:2-30

마 11:7-15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by pooh_in_the_Way 2021.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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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11: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11: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나은 자니라

11:10 기록된 보라 내가 사자를 앞에 보내노니 그가 길을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중에 세례 요한보다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1: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엘리야가 사람이니라

11:15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의 대답을 가지고 그 자리를 떠날 때에, 마태는 세례 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따뜻한 평가를 소개합니다. 요한이 제자들을 통하여 전한 예수의 신분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하신 답변 속에서, 군중들이 요한 자신이나 요한과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오해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세 요한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했을지라도, 그는 그의 역할을 온전히 이루었다고 평가하십니다.

 

예수의 평가에서의 초점은 시대(율법과 선지자)에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시대로의 전환에 있어 세례 요한의 중요한 역할에 맞추어집니다. 요한은 구원사의 전환점에 위치하였습니다. 약속된 메시야께서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에 대한 예수의 증거는 불가피하게 자신에 대한 기독론적 진술이 되는 셈입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라고 질문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군중들에게, 갈릴리를 떠나 요한이 설교하고 있던 유대 광야로 나간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바람에 좌우로 흔들리는 요단강의 갈대를 보러 나갔는가? 물론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다른 이유때문에 광야에 나간 것이 아니냐? 거기에 한 선지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너희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이 아니냐? 다시 다르게 물으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그 선지자가 무슨 좋은 옷을 입었다고 그것을 보러 갔겠느냐? 그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마 3:4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 띠었습니다.  헤롯과 같이 멋진 옷을 입은 자들은 광야에 있지 않고 왕궁에 있다는 것입니다. 광야에 세례 요한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요한은 헤롯에 의하여 체포되어 옥에 가두어져 있습니다. 다시 반문합니다. 그럼, 선지자를 보러 간 것이 아니던가? 맞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단지 선지자이었겠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선지자보다 나은 자니라.” 요한은 선지자 이상의 인물이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요한이 선지자보다 더 나은 이유를 설명하실 것입니다.

요한의 직위가 위대한 것은 요한이 섬기는 시대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궁극적으로 요한을 메시야의 강림과 메시야 시대에 앞서 나타날 것으로, 성경에 의해 '약속된 자'(“이 사람”)라고 확인하십니다. 이 인용문의 처음 행은 말라기 3:1에서 인용되었습니다. 

 

말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그러니까 요한은 그냥 아무 선지자가 아니라, 이전에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선지자, 하나님의 메시아가 오시면 그가 걸을 길을 준비할 직무을 타고난 선지자였습니다. 요한을 시대의 전환점에 있는 매우 중요한 인물로, 선지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자라는 것은, 동시에(비록 간접적이지만) 예수의 메시야 신분을 확인하는 더욱 확실한 증거인 셈입니다. 즉 세례 요한은 예수의 길을 예비했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이어지는 절들에서 이 주제를 계속 추구합니다.

 

요한은 옛 질서의 절정입니다. 즉 그는 과거의 선지자들과 같은 선지자이면서 선지자보다 나은 자입니다. 그에게서 구약의 기대는 궁극적이며 결정적인 화살표로 정련되는데, 이 화살표는 메시야의 임재를 가리키는 것이요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요한보다 더 큰 자는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즉 옛 질서에 속한 자 중에 중요성에 있어 요한을 능가하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또한 이 의도된 위대성은 결국 천국의 비교할 데 없는 위대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어떤 개인들을 서로 비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대들간의 대조를 나타냅니다. 예수의 사역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하는 새로운 현실은 너무 영광스럽기 때문에 지나간 시대의 가장 위대한 자도 새로운 나라의 질서에 속한 가장 작은 자보다 하위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12절은 마태복음에서 악명 높은 난문입니다. 간단히 언급하자면, 세례 요한이 온 이래 거대한 일들, 곧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날 이래로 천국이 나아가고 있었고, 그 천국의 진전에는 세례 요한에게 있었던 폭력과 고난이 누구에게나 수반되고 있으니 그것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따로 하겠습니다.

 

13-14절, 이제 요한에 대한 평가는 그 절정에 이릅니다. 요한의 때까지 히브리 성경은 성취의 시대를 내다보며, 성취는 요한의 때가 끝난 후 이루어집니다. 장차 올 일을 내다본 자는 선지자만이 아닙니다. 율법도 이러한 기능을 합니다. 율법은 성취의 시대에 있을 하나님의 뜻에 대한 더 완전한 계시를 위한 길을 준비합니다. 이와 같이 선지자뿐만 아니라 율법도 예언을 합니다. 가장 위대한 마지막 선지자 요한이 옴으로써 이처럼 앞을 내다보는 기능은 끝났습니다.

 

“오리라 한 자”라는 말은 말라기 4:5에 기초된 엘리야에 대한 일종의 통속적인 묘사로 말세의 임박함에 대해 넓게 퍼진 생각을 반영합니다.

 

말4: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말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말4: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곧 말세 전에 출현할 엘리야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러니까 10절에서 인용한 말라기 3장 1절에 함축된 내용과 동일한 주장입니다. 지금 율법과 선지자들이 예언한 엘리야가 이미 이 곳에 왔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17:10-13에서 다시 엘리야로 확인됩니다. 그는 부당하게 대우 받습니다. 요한에게 “임의로” 행했다는 것은(17:12)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가 곧 죽을 요한이 사실상 그 위대한 인물 엘리야라는 사실을 더 믿기 어렵게 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께서는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라고 부언합니다. 모든 일이 자신이 과거에 가지고 있던 확신들과 일치하지 않을 때 특별히 믿음이 요구됩니다. 

 

마지막 절, 예수의 권고는 앞서 말씀하신 내용이 비범하고 난해하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세례 요한이 예수께서 메시야로 오심에 그에 앞선 선구자로 묘사하는 위대한 인물일 수 있을 이 권고는 지금까지 말한 바를 긍정적인 응답으로 받아들이라는 초청이며 지성에 대한 호소일 뿐만 아니라 의지에 대한 호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더 크게 암시되어 있는 것은, "나는 엘리야 같은 이의 ‘뒤에’ 오는 메시아다”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리에게 “귀가 있거든 들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언가 은밀한 것,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이 하나의 사실을 가리키고 있는데,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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