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통전적으로 성경 읽기
마태복음부터 처음 읽기/마 10:1-11:1 파송설교

마 10:40-42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by pooh_in_the_Way 2021. 5. 15.
728x90

마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0장 16절 이후 예수의 말씀은 적대감, 박해, 순교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제자들에 대한 환대를 베풀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도 있었습니다(11절-13절에 있는 바와 같이).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자기 집안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약속하심으로써 그의 파송 설교를 마칩니다.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제자들이 반목과 핍박을 받듯이 제자들을 영접하는 이들도 사람들에게 질타와 핍박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권세를 가지고 제자들 편을 들고 계십니다. 영접을 받은 사람은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은 또한 다른 분에게서 보냄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제자들을 영접하고 그들의 말을 믿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자기 집에 하나님을 손님으로 모시게 되는 것보다 더 큰 은혜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대하는 것이 곧 선지자를 보낸 하나님을 대하는 것입니다(사무엘상 8: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대리인으로서 그의 선지자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였고, 구약의 옛 선지자들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마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13: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따라서 마태는 이 구절에서 `의인`과 `선지자`라는 칭호를 번갈아 사용합니다. 이 구절은 아마도 그가 파견된 특정 임무에 대해 그에게 권한을 부여한 사람의 전권을 짊어진, 임명된 대리인에 대한 유대인의 법적 이미지 또한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여호수아 11:15,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하나도 행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선지자의 상”은 아마도 선지자가 줄 수 있는 보상의 종류 또는 선지자를 환대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보상을 의미할 것입니다. 열왕기상 17:8-24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로부터 제공받았던 떡 한 조각에 대하여 가믐 동안 식량이 떨어지지 않은 일이 대표적입니다. "의인"은 "선지자"보다 덜 구체적인 명칭으로 여기에서는 제자들이 나쁜 사람보다 선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구약에서는 "의인"이라는 표현이 자신을 반대하는 "악인"을 둔 하나님의 백성에게 특별히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지자와 의인은 마태복음에서 짝을 이루어 나타납니다. 13:17외에도 23:29에도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선지자”와 “의인들”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짝을 지어 예수가 오기 전 시기를 언급할 것입니다.

 

다만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의존과 무기력한 것으로 상징되는 "작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도 없고 쉽게 억압당하고 힘없는 자들의 모습으로 파송되며,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의존하여야 했습니다. 적대적인 사회에서 예수를 대표하기 위해 나가는 사람들은 당연히 지위가 없고, 세상이 세력으로 말미암아 쉽게 밀려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예수와 제자들의 관계와 "나를 보내신 이"를 통해 이 "작은 자들"의 특별한 의미를 인식할 때 비로소 그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용의가 있고, 그래서 그들을 기본적인 환대하는 행위로 맞이할 용의가 있습니다. 더운 기후에서"냉수 한 그릇"을 마시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그것은 값싼 제공물이며, 친절과 더불어 예상되는 최소한의 환대의 행위입니다. 많지는 않지만, 심지어 그 작은 (헬라어로는 monon, “단 하나just one”, “단 하나only”라는 뜻으로 그것이 얼마나 적은지를 강조합니다) 그것이 나타내는 태도 때문에, 보상을 가져오기에 충분합니다.

 

마태복음에서 "보상"이라는 주제를 두드러지게 하려면 5:12를 참조하면 됩니다. 여기서 그 용어는 거기보다 더 구체적이지 않지만, 마태복음 25:31-46에 가면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를 도운 자들에 대한 보상(10장 42절의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주어진 "냉수 한 그릇"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로, 곧 "영원한 삶"으로 쓰여 있습니다. 반면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서 돌아 서 그들을 돌보지 아니한 자에게는 영원한 불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 평행 통로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의 대리인들이 어떻게 접견되느냐와 관련된 보상은 매우 높습니다.

 

이 단락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의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인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의 자녀된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증인된 예수의 제자된 신자들이 지극히 작은 자로 묘사되고 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영원한 나라와 영광된 복음을 증거하게 하시는 일에 그 일에 책임 맡은 자녀들을 보잘 것 없는 자로 보내시는가 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세상에 속한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기 위함입니다. 이 차이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얘수의 제자들인 신자들을 세상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 지극히 작은 자로서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신자로서 소망하고 목표하고 중요시하는 것은 하나님과 화목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0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상과 기독교인이 갈라 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께 속한 자이기 때문이요 또 그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세상과 어떻게 갈라 섰는가를 하나님과 화목된 것으로 증거할 요구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를 믿고 영원한 것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세상의 것으로 보상을 받으면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하나님과 화목하고 예수를 믿고 그래서 그 속에서 영원한 것을 준비하는 자로 알지 못하고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의 눈으로 기독교인들을 볼 때에 지극히 작은 자로 보내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