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마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마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마6: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의 의는 사람 앞에 보여 자랑으로 삼는 의입니다. 예수 안에서의 하나님 의는 하나님께서 은밀히 보시고 기뻐하시는 의입니다. 그것이 어떤 종교적 형태나 명분을 가지고 있다 해서 하나님께 열납드리는 것은 아니다는 것을 구제, 금식, 기도 등을 통해서 확인하였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하늘에 쌓는 보물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 행하는 것을 세상과 사람을 외면하고 세상과 분리되는 식으로 신앙 생활을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고 땅에 보물을 쌓지 말라는 말씀이 등장하는 이유는, 이 하늘에 쌓은 보물의 싸움이 세상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시험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입니다.
의에 관하여 예수 믿는 이들은,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신앙의 여정이 은밀하게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은밀한 행동이어야 함과 함께,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또는 사람들 앞에 비추어 착한 행실을 보게 함으로, 세상에 사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신앙 행위가 보여주는 것 때문에 하늘에 쌓는 보물이 어렵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께서 경배받으셔야 하는 자리에 자신을 올려 놓기 싶은 경향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대접받고 싶고, 군림하고 싶고, 자기를 치장하고 싶기 때문에, 구제나 기도나 금식 같은 대표적인 종교 행위로서도 이런 죄의 원리가 숨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죄는 저자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수는 없어도,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이 누구를 위하여 어떤 관점에서 행하는가를 보면 알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는가 입니다. 무슨 명분과 내용을 동원할지라도 자신을 내세우고 자신이 경배받으려는 행위는 바로 땅에 쌓는 보물이 됩니다.
왜 우리는 종교적이고 거룩한 내용을 동원해서도 사람 앞에 보이려 싶어할까요? 하나님 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늘에 쌓은 보물로서 증거됩니다. 하늘에 쌓은 보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열납받으시는 것으로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명분과 형태를 신앙적으로 포장으로 해서 결국은 세상 앞에 나가고 사람들 앞에서 평가받기를 좋아합니다. 근본적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본성이 있으며 또 하나는 세상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해의 범주 내에 있는 보물, 우리가 흔히 보물로 아는 것이 세상에 쌓는 보물입니다.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할 때에는 하나님의 인정하심의 범주에 속하는 보물입니다. 그러니까 땅에 쌓아 놓는 보물은, 도둑이 도둑질하고 녹이 슬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보물과 비교해서 하찮은 것입니다.
그래서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습니다. 예수는 "눈은 몸의 등불"이라 말합니다. 우리의 정신, 본성, 사랑하는 마음의 열심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스스로를 속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본심이 하나님을 향하는지, 세상을 향하는지를 우리가 스스로 시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어두움" 속에서 헤맬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허망한 일에 소진되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니까 사람의 이해의 범주와 하나님의 이해의 범주를 섞어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초월자`라고는 이해면서, 그분의 목적에는 손종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의 수단과 방법으로만 하나님을 요구하면,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함으로써, 세상이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세상이 주인 노릇을 하면, 우리를 지배하여 종으로 삼습니다. 그러면 제대로 된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반쪽 마음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성경은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세상이나 하나님이나 한 쪽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속이고 속기를 양쪽을 다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제, 기도, 금식 등을 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이 열납되고 있고, 신앙 생활을 적당히 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보물을 쌓고 있는지를 물어 보라는 것입니다.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내 마음이 가 있는가 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 우리의 눈을 감게 해서 우리를 자신의 휘하에 두려 합니다. 우리가 가지는 부패의 본성, 세상이 가지는 부패성의 힘이 결합을 해서 이루는 세상의 권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여서 세상이 우리를 주무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편 1편에서와 같이, 시냇가에 심기워진 나무이며, 반석 위에 세워진 사람이 됩니다. 튼튼한 근거 위에 신앙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종교적 행위로가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점검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