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oh_in_the_Way 2021. 3. 31.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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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최후 성만찬,

예수 그리스도의 고별사

 

14:12-31

 

막14: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막14:13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막14:14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막14:15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막14:16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

막14:17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막14:18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막14:19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막14:20 그들에게 이르시되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막14:21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막14:22 <마지막 만찬(마 26:26-30; 눅 22:15-20; 고전 11:23-25)>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막14: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막14: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막14: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막14:26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

막14: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막14: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막14: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막14: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막14: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유월절 만찬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마지막 유월절을 제자들과 함께 보내십니다.

누가복음 22 15절에 보시면,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시다시피,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을 해마다 가장 명절로 지키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를, 해방을, 하나님 백성으로의 부름을 주셨는가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예수님은 당신의 죽으심과 이제 묶고 계십니다. 유월절의 진정한 의미와 궁극적 목적이 예수 안에서 성취되는 , 예수의 죽음이 그런 의미의 결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성경 예레미아 31 31 이하에 바로 그런 약속이 이렇게 소개됩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언약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이 언약이 주어지는 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특별한 보호 속에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섬기는 일에 실패하였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실패한 이스라엘에게 저들이 실패했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약속, '너희는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약속은 내가 결단코 취소하지 않겠다, 약속을 이루고야 말겠다, 그래서 내가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이제는 외적 지원과 간섭보호보다 더한 내적 개입을 하겠다, 너희의 마음을 고치겠다, 너희의 생각을 바꿔 놓겠다'라고 하는 약속이 언약입니다.

 

그래서 오늘 보는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당신의 죽으심을 유월절과 엮으면서, 나의 , 언약의 피를 마시라고 하십니다. 22장에는, "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잔은 피로 세우는 언약이니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해서 이것이 예레미야에 약속됐던 언약의 성취인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죽음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들에 대한 역사적 증거이고,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결정할 문제이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로 드러난 우리의 선택, 우리의 의지, 우리의 응답, 우리의 노력 등의 모자란 것으로, 부족한 것으로 깨어질 없는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의 성취, 실패할 없는 하나님의 언약의 결정,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백성이 것이라" 어떻게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이루셨는지를 확인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자리에 앉아있는 여러분 모두가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자발적으로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에 어떻게 간섭하시는지, 그것이 예수 안에서 어떻게 역사적으로 구체적 증거가 되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우리의 생각에 개입을 하셨을까요예수 안에서 이루신 언약과 성취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승리하신 것같이 약속의 승리가 역사적 사실인데, 오늘 우리에게는 어떻게 이해되고 있고 현실로 나타나고 있을까요?

 

요한복음 15 5절로 갑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 비유를 가르치시는 내용입니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포도나무 비유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아무 데가 없습니다. 붙어있으면 그것은 하나의 가지가 아니라, 포도나무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분리될 수도 없고 구별될 수도 없습니다나무의 모든 생명을 가지가 공급받고 나무의 열매가 가지에 달리는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 자체는 아니지만, 가지는 나무에 붙어있음으로써 가지일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니 네가 안에 거하라' 그럽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안에 거하라' 안에 거할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계명을 지켜야 된답니다그것을 계명을 지키라라고 말씀하심으로, 계명을 킨다는 것이,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는 조건과 자격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축복과 특권으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 나무에 속한 것을 자기의 것으로 가지는 법이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요, 그것이 조건과 자격이거나 강요가 아닌 그것을,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 사랑 안에 거하라', 계명을 지켜라 사랑하라 같이 붙어 나오고, 나무에 붙어있는, 즉 연합을 요구하는 것이 사랑과 복종으로 요구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우리 세상 속에서의 단어, 연합, 순종, 사랑, 이것은 모두 각각 다르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단어를 하나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에 가면, 22절부터, 부부에 관한 성경의 명령이 주어집니다. 아내들에게는 남편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고 있고, 남편들에게는 아내에 대한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내들에게 요구하는 복종과 남편들에게 요구하는 사랑과 똑같은 의미입니다. 그것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아내의 영광이요,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은 남편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의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자마자 각각 상대방을 타자로서 보는 것이요, 성경에서 말씀하신 바, 둘이 합하여 하나가 되라는 말씀에서 멀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는 이 복종과 사랑을,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비유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축복이요 자랑인 것과 같습니다. 사랑은 말만 하는 아니고, 예수께서 그리하신 것같이 모욕과 수치와 고통을 걸어 당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항상 성경에서는 복종이라는 단어가 사랑과 동등한 지위와 내용과 의미를 갖고 등장하는 것입니다.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육체가 될지니 32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비밀'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신비'라는 말입니다. 신비가 크도다, 부부라는 연합은, 같은 편이라는 정도가 아니라, 연합은 어찌나 신비한지, 물리적인 연합도 아니고, 화학적인 연합도 아닌데, 이 세상의 어떤 법칙으로도 이해될 수 없는 것인데, 그것은 사랑이라는 단어와 순종이라는 단어로 밖에는 관계를 설명할 없는 하나됨이라는 겁니다.

 

하나됨은 어디에서 가장 크게 증거 됐느냐? 그리스도와 교회에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죽으시고 교회를 그의 몸으로 묶으십니다.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자들을 부르는 호칭(성도, 신자, 교회)으로 성경에서 '교회'라고 때는, "그의 운명과 실존이 예수와 묶여 있다"는 것을 말할 때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입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성취한 언약의 본질이요 진실입니다.

로마서에서는, 우리 자신으로는 죽을 밖에 없는 존재가, 예수와 묶여 예수의 부활에 참여한 자로, 예수 부활에 묶여 예수와 연합하여 지금의 존재는 예수 안에 있는 존재로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라고 이해하고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마가복음으로 돌아옵니다. 지금 유월절 만찬을 제정하시고, 이는 우리의 죽음의 자리에 따라 들어오시는 것입니다사랑입니다. 연합에는 다만 수와 묶이는 기계적인 방법이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당신과 묶기 위하여 우리의 죽음의 자리에 따라 들어온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대로 우리가 죽음의 자리로 밖에 없는 자리에 당신을 낮추시고 따라오시는 순종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십니다.

 

2

오늘도 베드로가 힘있게 말합니다. 마가는 베드로의 힘있는 확언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번씩 부인했습니다는 부정적 묘사에 무게를 더하는 것입니다. 마가는 반드시 베드로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마가복음에서 베드로와 함께 요한과 야고보가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오히려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여기 성만찬에 이어 베드로의 부인을 붙이는 것은, 한 편으로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이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각자 상처와 의심과 불만 속에 하나로 묶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스스로의 신앙에 어떠한 확신으로 있든 때때로 무너져서 얼마나 인간이 연약한지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모두 주님에게 연합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완성된 자가 아닙니다. 

 

교회는 공포와 자격 심의가 없는 곳입니다. 사랑이란 그런 것입니다사랑이란 자신의 판단과 정죄 아래 붙잡아 가두는 것이 아닙니다사랑은 항복을 받아내는 기다림입니다많은 눈물과 한숨이 없이 사랑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리 하십니다그의 아들을 주십니다놀랍지 않습니까?

들어와서 인생을 사십니다무한이 유한 속에 갖혀 인간의 손에 의한 역사 속에 당신을 맡기십니다음모와 배신과 억울함과 치욕에 순종하십니다그리하여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세상이 있는 모든 , 가장 비겁하고 가장 더럽고 가장 최후의 결정, 죽음까지를 감수하셔서 세상은 더이상 말이 없는 증거를 만들어 내십니다.

부활입니다. 부활이란 죽음으로 부터의 승리입니다여러분의 절망과 가장 가치없고 가장 못난 짓에서 만들어 내시는 부활이것이 기독교의 가장 신비죠!

신비의 부름을 받아 우리가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 현실일 것입니다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아는 약속을, 예수 안에서 성취하신 것을 적용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유월절 만찬의 의미는 <예수는 왜 죽었는가 - 예수의 의도 2>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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