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부터 처음 읽기/마 1:1-25

01_마 1:1 족보는 위험하기 그지 없는 후손 이야기

pooh_in_the_Way 2021. 3. 4.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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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다윗의 자손인 예수. 마태는 필요하여 이 족보 이야기를 들고 나왔는데, 실상 이스라엘의 선조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대인들 역시 대부분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후 1세기 무렵에는 다윗 왕의 계보를 통해 자신의 족보를 추적할 수 있는 사람이 매우 드물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과의 족보 상의 연결은 그리 환영 받지 못할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다윗의 아들이자, 왕위 계승자인 솔로몬과 그 뒤를 이은 그러니까 다윗의 후손들이자 다른 유다 왕들을 거쳐 바벨론 유배 시대에까지 이어지는 왕가의 족보를 통해 자신의 족보를 추적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더 적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빌로니아 유배 이후로는 줄곧 이스라엘의 왕정이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바벨론부터 시작해서, 계속하여 페르시아,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후계자들로 이어지는 헬라 제국, 그리고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탄생하시기 전 200년 동안 유대인을 다스린 왕과 여왕들은 다윗 혈통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곧 만날 늙은 왕 헤롯 대왕은, 왕가의 피를 물려받지도 않았고 심지어 온전한 유대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로마가 중동지역에서 정책상 왕으로 세운 기회주의적인 군대 사령관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유대인으로부터 전혀 지지를 받지를 못하는 소위 유대인의 왕일 수밖에 없었으므로, 극도의 전제정치를 펴나갔으며 조금이라도 그의 왕권에 도전하는 일이 있다면 전혀 관용을 베풀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당시에 자신이 고대의 유대 왕들의 족보를 계승하는 후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 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동족들 앞에서 그 이야기를 하거나 선조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사실 정치적인 선언을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발설하는 즉시 바로 헤롯의 정탐꾼들에게 들켜 끌려 가서 잔악한 헤롯 대왕에게 희생 당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태가 예수를 대신해서 바로 그 일을 합니다. "예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그러나 유대인 모두가 웃겠지요. "나도 그래"라고 말입니다. 유대인들의 그들의 신앙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숭배하기에 모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다", 그러면 모두가 주위를 둘러 보며, 조심스럽게 묻겠지요, "정말?" 물론 유대인들의 지파들 가운데는, 12 지파가 있는데, 다윗이 속한 지파인 유다 지파에 속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생존하는 다윗의 몇 대 후손들, 몇몇은 기억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미 오랫 동안 기름 부음을 받지 못한, 쇠락한 왕손들입니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다윗의 자손 운운합니다. 거기에 덧붙여 그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일종의 지위를 나타냅니다. 특별한 직무를 위하여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왕, 선지자, 제사장들은 모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름에 붙여 '그리스도'(영어식으로 정관사를 붙여서) 그러면, 의미가 사뭇 달라집니다. "예수, 바로 그 메시아"라는 의미입니다. 이 수치스러운 피지배 역사 속에서, 그러니까 이미 구약 성경이 예언한 바가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유배되는 사건 후에, 유대인의 하나님, 곧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에게로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 메시아'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회복하여 이 지상에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된 영광된 이스라엘을 세울 자'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는 순간 매우 위험스럽기 그지 없는 소위 '이스라엘의 구원자'라는 엄청난 정치적 선포로 바뀌어집니다.

 

그러니까 마태는 예수가, 이미 희미해졌지만 계속해서 이어져 왔던 어떤 가문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사실은 그 전체 족보의 목표, 마침내 약속하신 바 대로 하나님이 보내시는 '그 메시아'의 출현임을 강조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태는 이름의 목록을 열네 개씩 세 그룹으로 묶어서 족보에 배치합니다. 히브리어 '다윗'을 영어 식으로 쓰자면, 'DVD"인데, 각 철자에는 유대식 숫자가 배정되어 있어, 숫자를 대입하면, 4+6+4, 그래서 열 넷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다윗을 강조하고, 심지어는 마태는 다소 이름을 몇 개를 생략하여 의도적으로 열 넷씩 배치했다고 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익숙한 계산법이기도 하여 무리가 없습니다. 여기에 더 좋은 해석이 있습니다. 일곱 개씩 여섯 그룹으로 묶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일곱이라는 숫자는 가장 강력한 상징성을 지닌 숫자였고, 지금도 그렇게 여깁니다. 일곱 개씩 묶인 일곱 번째 그룹을 시작하는 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그 전체 목록의 절정임이 분명하겠지요. 예수의 탄생은 이스라엘이 2천 년 동안(이 햇수에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불러 낸 해가 기원전 2200-1800년 사이로 본다는 학설에 따라) 기다려 온 바로 그 탄생이라고 마태는 말하는 것입니다.

 

NICNT(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60-61쪽을 참조해봅니다.

마태의 “기원의 책”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다윗의 자손” 메시아가 올 때까지 하나님 백성의 역사에 대한 실제적인 개관이다. 마태는 각각 14대씩 조화롭게 셋으로 나눔으로써 역사의 완성을 강조하며, 실제 역사를 이 양식에 맞추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은 저자로서 이것이 통계 조사가 아니라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에 대한 신학적인 반성임을 암시한다. 이제 준비 기간이 마무리되었고, 이 단계는 약속된 메시아의 도래 가운데 성취의 때가 동트기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태가 족보를 14대씩 셋으로 나눈 것이 단순한 역사 관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관련 실제 역사 기간의 측면에서 세 기간 사이의 불균형으로 드러난다. 아브라함이 살았을 시기에 대해 논쟁이 되고 있지만 아브라함이 적어도 다윗보다 7-8백 년 전에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족장이 장수한 것으로 보고된 것을 고려하더라도 14대를 채우기에는 긴 기간이다. 다윗부터 포로까지 약 400년이며, 앞으로 보게 될 것처럼 심지어 이렇게 상대적으로 적절한 기간도 14대에 맞추느라 누락시킨 역대 왕조 계승자도 겨우 네 명뿐이다. 포로부터 예수 탄생까지 추가로 600년이 걸려서, 결국 마태복음은 이 기간 전체에 13명의 이름을 써서 다시 한 번 “세대”가 너무 길어져 개연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같은 기간에  누가복음이 22명을 기록한 것과 비교). 일부 다른 성경 족보처럼, 마태의 목록도 선별한 것으로 보이고, 14대씩 3분하는 구도도 통계 기록이라고 볼 수 없는 다른 작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하필 '아브라함'이고 '다윗'이냐를 설명하여야 합니다.

 

이 족보의 특정 인물들 또한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위대한 약속을 주신 첫 시조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받을 것이고, 모든 민족이 그의 후손들을 통해서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구약, 창세기 12장부터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지금도 추앙 받는 인물로, 삼각형 두 개를 상하로 묶어 놓은 별을 '다윗의 별'이라 하여 '다윗 왕의 방패'라는 의미로서 유대인 또는 유대교의 상징적인 표시이며 이스라엘 국기에도 들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훗날 그의 후손을 통하여 온 세상을 다스릴 것에 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바벨론 유배 후에는 '유대인'이라고 불렸습니다) 바벨론(바빌로니아) 유배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신 모든 약속이 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상실된 것처럼 보였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유배 시기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 후손으로 인한 '백성'과 다윗의 '왕가'를 회복하실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뒤로 이어진 오랜 세월은, 그러니까 일부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교도 외세의 압제에 시달리며 살았던 그 세월들은, 많은 사람이 보기에 ‘유배’가 계속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죄와 그 죄로 인한 심판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를 기다리는 시기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마태는 말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일이 일어날 때가 왔다고,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그리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를 잇는, 이 목록의 맨 끝에 나오는 이 아이가 바로 그 옛날의 모든 예언을 속속들이 성취하러 온 분,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신약 성경의 맨 앞자리를 차지해 왔습니다. 수없이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가 누구이었고(역사적으로) 누구인지(신학적으로)를 직접 탐구해 보려고 먼저 이 족보를 읽었습니다. 일단 이 족보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고 나면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어 나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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